사회 사건·사고

캄보디아 ‘악의 연대기’, 한국인 납치와 검은 자금의 그늘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19 10:41

수정 2025.10.19 10:41

범죄조직과 부패 권력이 얽힌 동남아의 그물망, 한국의 검은 돈이 흘러들다
(출처=연합뉴스)
(출처=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앙코르와트의 유적과 휴양지로 유명했던 캄보디아가 이제는 범죄의 은신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국인 납치와 감금, 인신매매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그 배경에는 돈과 권력, 그리고 국제 범죄의 어두운 고리가 얽혀 있다.

19일 중국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인근에 있는 ‘망고단지’는 불법 온라인 도박, 가상자산 사기, 인신매매의 중심지로 지목됐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이 단지는 외부인의 접근이 차단된 채, 중국계 조직과 현지 공권력 일부가 결탁한 범죄 허브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 피해자들은 이곳에서 “몸으로 빚을 갚으라”는 협박을 받거나, 감금 상태로 강제 노동에 동원되기도 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인 범죄조직들은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에서 도박사이트나 전화금융사기를 운영했다.

하지만 경찰 공조가 강화되고, 미얀마·라오스 접경지대 ‘골든트라이앵글’이 여행금지 구역으로 묶이면서 범죄자들은 새로운 피난처를 찾아야 했다.

그 대체지로 떠오른 곳이 바로 캄보디아였다.

여기서 그들은 현지 중국계 조직과 손을 잡았고, 국내 불법 대부업체를 통해 채무자나 청년을 인신매매 시장에 공급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한 30대 남성은 “빚을 못 갚으면 캄보디아에서 몸으로 갚으라며 항공권까지 끊어줬다”고 증언했다.

캄보디아는 또 한국의 불법 자금이 흘러드는 통로로도 악명 높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은 캄보디아 신도시 ‘캄보시티’ 개발에 무리한 투자를 벌이다 파산했고, 3만8천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2019년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는 실체가 불분명한 캄보디아 부동산 사업에 1억 달러(약 1,370억 원)를 쏟아부었으나 회수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통일교와 희림종합건축사무소가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매개로 메콩강 부지 개발과 신공항 건설 등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청탁했다는 의혹으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경제적 이익을 노린 국내 세력과 캄보디아 권력층 간의 유착이 구조적으로 이어진 셈이다.

훈센(Hun Sen) 전 총리는 1997년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뒤, 30년 가까이 철권통치를 이어왔다.

현재는 장남 훈마넷(Hun Manet)에게 총리직을 넘겼지만, 상원의장으로 국정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

캄보디아 내 주요 개발사업과 외국계 투자에는 여전히 훈센 가문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한국 자금이 흘러들어 ‘검은 세탁’을 거쳐 제3국으로 빠져나가는 경로가 형성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봉철 한국외대 교수는 “경제적 자립도가 낮고 정치적으로 폐쇄적인 체제에서는 범죄조직이 국가 권력의 틈을 파고들 여지가 많다”며
“한국의 불법 자금이 캄보디아를 거쳐 해외로 반출되는 흐름을 추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 뿌리는 단지 범죄조직의 탐욕에만 있지 않다.

한국 정부가 지난 수십 년간 캄보디아의 인권침해와 부패 문제에 침묵하며 실리 외교를 우선시한 결과이기도 하다.

2013년 캄보디아 총선 당시 선거 부정 의혹이 제기됐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동안 한국은 “내정 불간섭”을 이유로 침묵했다.

일부 국회의원단은 오히려 “민주주의가 정상화됐다”고 평가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은 “한국이 ‘좋은 게 좋은 것’ 식으로 대응해오며 외교적 지렛대마저 잃었다”며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문제를 국제적 공조로 다룰 수 있는 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