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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통장 넘기고 3000만원 받아… 계좌 묶이면 고문 시작[여기는 동남아]

김준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19 18:22

수정 2025.10.19 18:48

피해자이면서 가해자 뒤섞여
범죄 알면서 스스로 가담 많아
스캠산업 중심지 시아누크빌
범죄단지와 호텔 구별 어려워
감금당하면 탈출 거의 불가능
대포통장 넘기고 3000만원 받아… 계좌 묶이면 고문 시작[여기는 동남아]

【파이낸셜뉴스 프놈펜·시아누크빌(캄보디아)=김준석 특파원】 "일부 납치·감금자들은 공항에서 납치돼 바로 감금되지 않고, 이후 실적과 채무 등에 따라서 감금되는 등 운영 방식이 웬치(범죄단지)별로 다르다. 대다수 웬치는 자율이 보장되며 근무시간과 휴식시간이 나뉘어 있고 스마트폰 사용도 가능하다. 또 웬치 내 카지노·운동장·식당·노래방·바 등 편의시설이 있어 많은 청년들이 범죄행위에 가담해 번 돈을 이곳에서 탕진하고 빚을 져 웬치 체류기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다수의 교민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과 시아누크빌에서 본지와 만나 최근 한국인들 납치·감금 사태와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한국에 알려진 것처럼 늘 납치와 감금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교민들은 "웬치별로 운영방식이 모두 상이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일부 웬치는 성과를 내는 인원들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며, 후한 인센티브(성과급)를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됐던 64명 명 중 상당수가 "한국행을 거부했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 피해자 겸 가해자, 가해자가 공존"

때로는 대학생 사망사건과 같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지만 캄보디아 교민사회에서는 범죄인 줄 알면서도 스스로 현지 범죄조직에 제 발로 가담하는 청년이 많다고 말하고 있다. 자발적이지 않은 순수한 피해자도 있지만, 상당수가 범죄임을 알고도 가담해 보이스피싱·로맨스 스캠·불법 리딩방·노쇼 등 범죄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고는 처벌받는 게 두렵거나, 불법행위로 모은 돈을 압류당할까 한국행을 거부하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19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앞서 다수 매체에서 집중 조명한 웬치들은 공항에서 피해자를 만나 차를 타고 흉기로 협박 후 곧장 납치하는 사례도 있지만 상당수는 범죄행위에 스스로 가담하고, 이로 인해 생긴 채무로 감금과 고문이 시작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다수의 교민에 따르면 한국에서 제보를 받고 캄보디아 경찰과 함께 출동해 감금자와 면담하면 "휴식시간도 있고 스마트폰도 이용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답해 어이없이 수사가 종결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전날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구출한 3명의 20대 청년 모두 오전 5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과를 진행했으며, 일과 후에는 스마트폰 사용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범죄에 가담하고 범죄행위를 하는 과정을 현지 교민과 캄보디아 당국의 설명을 통해 종합하면 우선 모집책들이 무직자나 구직자를 상대로 캄보디아행을 권유한다. 입국 후에는 캄보디아 전역에 산재한 현지 '스캠 단지' 내 숙소로 이동해 대포통장 개설을 요구받는다. 대포통장을 넘기면 일단 현금 3000만원이 즉시 납치·감금자에게 지급된다. 이들의 대포통장은 범죄단체의 세탁용 계좌로 사용된다. 조직은 각 통장에 대규모 금액을 넣었다가 빼는 돈세탁을 반복한다.

그러나 한국 금융당국이 최근 이 같은 거래패턴을 주시하면서 계좌 거래정지가 빈번해졌다. 이 경우 범죄조직은 통장에 묶여버린 마지막 입금액에 당초 지급된 3000만원을 더한 금액을 납치·감금자에게 채무로 통보한다. 1인당 보통 8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의 빚이 생기고, 조선족을 비롯한 중국인 관리자들의 감금·폭행·고문 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진다고 한다.

■헌병대 바로 앞 웬치… 현지 경찰이 도피 조력

17일 본지는 '글로벌 스캠산업의 중심지' 시아누크빌을 방문했다. 수도 프놈펜에서 214㎞ 떨어진 시아누크빌은 캄보디아 내 웬치의 절반 이상이 위치해 있다. 당초 중국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면서 중국인 30만명을 이주를 목표로 했으나, 코로나19를 비롯해 중국의 경기악화로 실제 8만~10만명의 중국인이 시아누크빌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다수가 '웬치 생태계'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방문한 시아누크빌은 호텔·카지노와 일반 웬치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한 시아누크빌 교민은 "고층 건물의 경우 입구가 좁아 감금당하면 탈출이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몇몇 웬치는 뛰어내리는 것 말고는 나갈 방법이 없는 말 그대로 '생지옥'"이라고 표현했다.

시아누크빌 경찰당국 또한 웬치 현황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웬치의 경우 도로를 두고 대담하게도 군 헌병대 맞은편에서 버젓이 운영 중이었다. 교민은 "세수의 대부분과 불법 뇌물들을 상납하고 있는 상황에서 웬치 급습에 나서면 본인에게도 피해가 가는 상황인데 경찰이 쉽사리 움직일 수 있느겠냐"고 반문했다.


이번 캄보디아 사태의 해법을 두고 캄보디아 최고지도층의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실권자 훈 센 상원의장(전 총리)과 첫째 아들인 훈 마네트 현 총리는 물론 미국 재무부의 제재대상인 후이원그룹의 이사로 활동한 훈 센 의장의 조카 훈 또까지 훈 센 일가 모두가 보이스피싱 등 스캠범죄와 광범위하게 연루돼 있다는 이야기가 현지에서는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현지에서는 최빈국 중 하나인 캄보디아가 범죄조직으로부터 막대한 수익을 얻는 상황에서 이 같은 '달콤한 유혹'을 떨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