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P-1 비만치료제가 바꾼 다이어트 시장
질병으로서의 비만.. 폭발적인 시장 성장세
완벽하진 않지만 비만치료 패러다임 바꿔
[파이낸셜뉴스] “살이 빠지는 게 눈으로 보이니까 운동이 즐겁다. 넉달 만에 20kg가 빠졌다.”30대 여성 직장인 A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체중계 위에 오르는 게 두려웠다. 잦은 회식과 야식,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체중이 80kg까지 늘었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헬스장 등록과 식단 조절을 시도했지만, 의지력이 부족했다.
A씨는 “주사를 맞고 나서 식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평소보다 반도 못 먹는데 배가 부르고, 억지로 더 먹으면 몸이 거부감을 느꼈다"며 "대신 구역감과 어지러움이 따라왔지만 체중이 눈에 띄게 줄자 운동할 의지도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약 4개월 만에 체중을 60kg 초반대로 줄였다. 이후 ‘요요’로 3~4kg이 다시 늘었지만, 위고비 사용을 중단하고 다이어트 한약과 식단 조절로 체중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는 “비만은 단순히 의지 부족이 아니라 질병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비만은 질병, 치료 시대 활짝 열렸다
비만은 더 이상 미용 목적의 다이어트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비만을 ‘질병’으로 규정했다. 체내 에너지 대사 이상으로 인해 각종 만성질환을 유발하는 ‘대사성 질환’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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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시 비만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내 비만 유병률은 2008년 31.8%에서 2023년 38.4%로 상승했다. 10명 중 4명은 비만에 해당하는 셈이다. 비만은 당뇨병, 고혈압, 지방간, 관상동맥질환 등 각종 대사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이처럼 비만을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바라보는 인식 변화가 본격화된 것은 GLP-1 계열 약물의 등장 이후다.
GLP-1 유사체는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약물이다. 이 약물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위 배출을 지연시켜 포만감을 오래 유지시키며 △뇌의 식욕조절 회로에 직접 작용해 식욕을 억제한다.
대표적인 약물이 노보노디스크의 ‘삭센다’와 ‘위고비’,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다. 위고비는 주 1회 주사하는 방식이며, 평균 15~20%의 체중 감량 효과가 입증됐다. 기존 비만치료제보다 효과가 3~4배 높다는 평가다.
마운자로는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간다. GLP-1과 GIP 수용체를 동시에 자극하는 ‘이중 작용제’로, 식욕 억제와 포만감 유지를 강화했다. 단일 작용제보다 체중감량 효과가 크고, 당 대사 개선에도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완벽하진 않지만.." 비만치료의 판을 바꿨다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등장은 단순한 약물 혁신을 넘어 비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끌고 있다. 먹는 걸 참지 못하는 의지 부족으로 치부됐던 비만이, 이제는 치료와 관리의 대상이자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질환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A씨의 사례처럼 GLP-1 계열 비만치료제는 단기간에 체중을 줄이는 데 강력한 효과를 보인다. 그러나 완벽한 치료제는 아니다. 구역감, 어지러움, 변비, 설사 등의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으며, 복용 중단 시 일정 부분 ‘요요’가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비만은 만성질환이므로 약물은 관리 도구 중 하나일 뿐, 생활습관 개선 병행을 강조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GLP-1 계열 약물이 비만의 병태생리를 직접 겨냥하는 첫 치료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만을 치료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이 약물의 등장은 의학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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