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부담이요? 시간만 줄일 수 있다면 전혀 상관 없습니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행정예고를 통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의 허가 수수료를 기존 803만원에서 3억1000만원으로 40배가량 올리기로 했지만 제약·바이오업계는 대체로 호평 일색이다. 당장 늘어나는 비용 부담보다 앞으로의 효익이 크다는 게 이유인데, 처음에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없던 비용 부담이 고정적으로 저렇게나 늘었는데 상관이 없다는 건가.
제약·바이오업계는 식약처가 비용 부담 대신 줄이겠다고 한 '기간'에 방점을 뒀다. 식약처는 수수료를 크게 늘리는 대신 현행 평균 406일 걸리던 허가 기간을 295일로 줄일 방침이다.
제약·바이오업계는 앞으로의 몇년이 향후 수십년의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판도를 결정짓는 골든타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의약품과 임상적 효능은 차이가 없지만 오리지널 대비 저가에 공급돼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고 사회적 의료비 부담을 낮출 수 있다.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일반 소비자의 이미지가 나쁘지 않은 데다 대내외 환경도 바이오시밀러 시장 확대를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는 2034년까지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 118개가 만료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 시장에서의 최대 경쟁력은 '속도'가 될 것이 분명한 상황이다. 제약·바이오 기업 입장에서 기존에 추진 중인 바이오시밀러 허가를 빠르게 마무리짓고 역량을 또 다른 바이오시밀러에 집중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얻는 실질적인 이득이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인적분할을 의결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결정 이면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의 역량 강화도 있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사업 극대화도 깔려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남아 있는 것은 과연 실제적으로 기간이 줄어들 수 있을지에 대한 신뢰 여부다. 식약처는 전문성 있는 고역량 심사관을 채용하면 심사의 질을 높이고 기간을 단축하는 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는 단순히 의약품 전반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심사관이 바이오시밀러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라는 특수한 분야를 다루는 심사인력은 해당 분야에서의 전문성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도 바이오시밀러 허가 과정에서 허가를 신청한 기업들이 심사인력에 내용을 설명해주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2년여마다 담당 심사인력이 바뀌는 현재의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기업 입장에서 심사의 일관성이 지켜지기 힘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오시밀러 전문성을 갖춘 심사관을 다수 확보하고 심사에 연속성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바이오 시장을 국가 성장의 핵심 축으로 판단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식약처와 보건복지부는 지난 16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차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각각 신속허가 인력·제도 확충과 의료데이터 활용성 제고방안을 내놓았다.
핵심은 결국 정확성과 속도다.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인력 확보를 통해 양질의 심사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업들의 허가가 크게 늘게 된다면 결국 우리나라 바이오 생태계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야심찬 제도 개선의 결과가 '비용은 크게 늘었는데 기간 단축은 제자리'라는 최악의 상황이 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예정된 기간을 잘 지켜 '납기의 민족'으로 불리는 우리가 현재까지는 사실상 불모지였던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도 '납기의 민족'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kim091@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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