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낡은 오브제에 감정 입혀… 불온한 세계 그린 초현실적 인형극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20 18:32

수정 2025.10.20 18:32

대만 작가 시용쥔 서울 첫 개인전
빠르게 버려지는 사물들의 현실
사랑 이면에 드러난 감정과 닮아
7개의 다른 서사로 새롭게 해석
아라리오갤러리서 12월 6일까지
호텔 룸과 복도, 거실, 주방, 바, 공연 무대, 도로 등 총 7개의 서로 다른 무대. 전시장에는 가상의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소재로 삼고 있었다. 낡은 오브제들이 빚어내는 이 세계는 사랑과 욕망, 순수.와 타락의 경계를 넘나드는 한 편의 초현실적 인형극처럼 보여진다.

서울 종로에서 열리는 대만 작가 시용쥔의 서울 첫 개인전. 위에서부터 '불온한 사랑(Forbidden Love)' ‘애프터눈 토이 키친 세트’ '달밤의 중매자'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서울 종로에서 열리는 대만 작가 시용쥔의 서울 첫 개인전. 위에서부터 '불온한 사랑(Forbidden Love)' ‘애프터눈 토이 키친 세트’ '달밤의 중매자'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사랑의 이면에 도사린 욕망과 배신의 감정을 인형극 무대 위에서 불온한 파편의 한 장면으로 표현한 전시가 서울 종로에서 펼쳐진다. 아라리오갤러리는 대만 작가 시용쥔의 서울 첫 개인전 '불온한 사랑(Forbidden Love)' 전을 오는 12월 6일까지 3개 층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인형극 무대를 연상시키는 입체 연작을 중심으로, 이를 회화와 영상으로 확장하며 '불온한 세계'의 환상적 서사를 다층적으로 펼쳐낸다.



주방, 복도, 침실, 거리, 바, 공연 무대, 거실 등 일곱 개의 서로 다른 장면은 오래된 장난감, 상품 패키지, 유년의 기억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명 '불온한 사랑'은 서로 다른 시대와 환경에서 온 사물들이 하나의 무대에서 새롭게 맺는 낯선 관계의 은유이자, 사랑 속에 숨겨진 욕망과 배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시용쥔은 대만의 경제 부흥기, 군부대 인근 마을에서 자라며 빠르게 버려지고 교체되는 사물들의 덧없음 속에서 예술의 단서를 찾았다. 1980년대의 상품 이미지와 광고, 패키지 등을 차용한 그의 작업은 현실의 질서를 전복하며 유년과 사회, 환상과 기억이 교차하는 무대를 구축한다.

낡은 오브제에 감정 입혀… 불온한 세계 그린 초현실적 인형극

특히 시용쥔의 '토이 세트(2025)' 연작은 인형극 무대를 연상시키는 입체 작품으로, 주로 탁상형 규모의 디오라마(diorama) 형태를 띤다.

각각의 무대는 작가가 수집한 빈티지 상품 패키지와 인형, 장난감, 유아용 클레이를 재료로 삼아 구성된다. 일련의 무대는 7개의 다양한 장소를 묘사하는데, 그로부터 발췌된 장면들이 회화 연작 및 영상 작품으로 재창조되며 각각의 작품 간 연결성을 드러낸다.

무대 안에 배치된 24개의 인형들은 서사를 전개하는 등장인물로서, 여러 매체로 변주되는 장면 가운데 거듭 모습을 드러낸다. 7개의 무대가 상징하는 다양한 관계 안에서의 사랑, 즉 모녀 간의 유대, 연인 간의 애정, 친구 사이의 우정, 꿈에 대한 열정의 이면에 도사리는 배신과 경쟁, 욕망 등 불온한 감정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토이 패키징(2022)' 연작에서도 그는 자신이 상상한 장면들을 비닐 또는 상자 패키지 안에 압축해 재포장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수집된 장난감들은 장면의 서사를 보다 본격적으로 주도하는 동시에, 대량 생산된 상품으로써의 본질을 암시하는 역설적 성질을 지니게 된다.

입체적인 무대 장치 속 다양한 인형과 사물들을 활용해 일종의 부조리극과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행위를 통해 사회문화적 현실의 거대한 질서를 스스로의 미시적 우주 내에 재배치한다.

낡은 오브제에 감정 입혀… 불온한 세계 그린 초현실적 인형극

일련의 무대는 선전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회화 연작과 시간성을 지닌 영상의 형식으로 재구성된다. 그런 작업 과정 가운데, 정지된 사물의 형태 안에 내재해 있던 실제의 역사는 작품세계 내에서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허구의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시용쥔은 작품을 통해 단일하고 선형적인 서사를 제시하기보다, 관람객 각자의 서로 다른 인식에 기반해 주제 의식을 다각도로 해석하고 성찰하기를 제안한다.

천광이 국립대만미술관장은 "시용쥔의 작품을 마주하는 관람객은 가장 우선적으로 존재한 최초의 원형이 장난감인지, 사진인지, 회화·애니메이션·영상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중 무엇이든 임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며 "그러한 지점에서 그의 창작 방식이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님이 명확해지는데, 모방과 전유, 창작, 재현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그 멈추지 않는 동력은 마침내 현실 자체에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고 평론했다.


한편, 시용쥔은 1978년 대만에서 태어나 2003년 국립대만예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대만의 산업화와 소비문화가 교차하던 시기에 성장한 그는 버려진 사물과 인형을 예술의 언어로 되살리는 작업을 이어왔다.


화이트 래빗 갤러리(시드니, 2025·2024), 하이데 현대미술관(멜버른, 2024), 타이동 미술관(대만, 2023), 롱 뮤지엄 웨스트번드(상하이, 2022), 신베이 아트센터(대만, 2020), 금일미술관(베이징, 2012) 등에서 열린 주요 단체전에 참여하며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았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