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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사이버레커 기승인데 행정조사 무더기 각하... 조사 시작조차 못 했다

박성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26 14:29

수정 2025.10.26 14:33

지난 1일 특허청에서 승격한 지식재산처가 입주한 정부대전청사 전경. 뉴시스
지난 1일 특허청에서 승격한 지식재산처가 입주한 정부대전청사 전경.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 연예인 A씨는 유튜브에 올라온 'A씨 결혼 임박' 영상으로 곤욕을 치렀다. 썸네일에 A씨 얼굴 사진이 허락 없이 사용됐으며 영상 내용은 근거 없는 추측뿐이었다. 광고 수익을 노린 사이버레커 소행이었다. A씨는 이 행태를 지식재산처에 퍼블리시티권 침해 행위로 신고했지만 행정조사는 시작조차 되지 않고 종결됐다.

최근 유명인의 사진이나 영상을 도용해 허위·왜곡 콘텐츠를 확산하는 사이버레커가 속출하는 가운데 법적 근거 미비로 지식재산처가 퍼블리시티권 침해 행위에 대해 행정조사를 개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퍼블리시티권이란 성명·초상·음성 등 개인의 정체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리다.

■지식재산처, 플랫폼사에 개인정보 요청할 법적 권한 없어
26일 정진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식재산처에게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종결된 퍼블리시티권 행정조사 48건 중 31건이 각하로 처리됐다. 각하 사건의 대다수 사유는 사이버레커 신원 파악 불가였다. 행정조사기본법·부정경쟁방지법상 지식재산처는 사이버레커를 행정조사 대상자로 특정하기 위해 플랫폼사에게 실명·주소·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신원 파악이 안 돼 조사 시작부터 좌초된 것이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라 조사 기관은 조사 대상자에게 자료제출·출석·진술 요구를 할 수 있으며 필요시 현장조사도 실시할 수 있다. 다만 이때 조사 대상자는 사이버레커에 한정될 뿐 그의 정보를 보유한 플랫폼사는 법적으로 조사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정확한 신원 특정이 불가능하다. 아울러 부정경쟁방지법상 퍼블리시티권 침해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기에 수사기관의 영장 청구를 통한 강제 정보 확보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식재산처는 구글 등 글로벌 플랫폼사에 정보 공유를 요청했지만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식재산처 부정경쟁조사팀 관계자는 "퍼블리시티권 침해자 정보를 플랫폼사에게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연구용역을 의뢰했으며 연내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히 지식재산처는 관세법을 유사 입법례로 삼고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관세법상 세관장은 마약류·총포·도검·화약류 등을 수출입하려는 승객을 검사하기 위해 선박회사나 항공사에 구체적인 승객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 이 같은 법 구조를 본떠 행정조사 시 사이버레커 정보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소송은 시간·비용 측면에서 비효율적"... "연구용역 후 신속히 법 개정해야"
피해자들이 사이버레커 대상으로 민·형사상 소송에 나설 수도 있지만 오래 걸리는 재판 시간과 높은 변호사 비용이 부담이란 지적이 나온다. 또 실형 선고 비율이 높지 않으며 소송 제기자의 신원이 공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반면 행정조사를 위한 퍼블리시티권 침해 신고는 당사자뿐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어 신고자 신분이 보호되며 별도 비용 없이 빠른 처분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지식재산처에 여러 차례 행정조사를 요청한 제보자 B씨는 "손해배상 소송을 걸더라도 변호사 비용과 사이버레커가 이미 번 돈을 고려한다면 기대되는 배상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고 소송 장기전도 부담이라 행정조사를 선택했다"며 "3년 전부터 퍼블리시티권 침해 신고를 꾸준히 했지만 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종결 처리돼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정진욱 의원은 "사이버레커의 행태는 클릭 수를 위해 타인의 인격과 사생활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신종 온라인 폭력"이라며 "특히 인공지능(AI) 발전으로 초상과 음성이 무단으로 복제·편집되는 시대인 점을 감안한다면 지식재산처가 진행 중인 연구용역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실효성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sh@fnnews.com 박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