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일본 조선업계가 전례 없는 대형 투자에 나선다. 선박 건조 능력을 2배로 확대하기 위해 3500억엔(약 3조3074억원)의 설비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 재개도 검토한다. 설비 투자에 필요한 정부의 재정 지원도 요청할 방침이다.
23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이마바리조선 등 17개 조선사로 구성된 일본조선공업회의는 이날 자민당 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의 민간투자 계획을 설명할 예정이다.
3500억엔 규모의 투자금은 차입 등을 통해 조달되며 대형 크레인 도입, 디지털 전환(DX), 로봇 활용, 인재 육성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일본조선공업회의는 자체 자금 조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에 '필요한 지원 규모와 비율을 갖춘 기금 조성'도 요구할 방침이다.
이번 투자 계획은 일본의 선박 건조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해양 진출을 강화하는 중국에 대해 미·일 양국 정부가 협력해 대응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국내 체제 정비를 서두르려는 목적도 있다.
조선업은 미·일 관세 합의에 따라 일본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주요 분야 중 하나다. 미국 조선업의 부활을 지원하기 위해서도 일본 내 환경 정비가 중요하다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이미 오는 2035년까지 선박 건조량을 현재보다 2배 늘리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자민당은 지난 6월 국가 주도로 1조엔(약 9조4496억원) 이상의 투자가 가능하도록 관련 기금 설립을 정부에 제안한 바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리도 지난 21일 종합경제대책에서 관민 협력을 통한 위기관리 투자 사례 중 하나로 조선업을 명시했다.
선박 건조에 핵심 장비인 대형 크레인은 철판 블록 조립 과정에서 블록 크기를 키워 공정 회전율을 높여준다. 대형 크레인 한 대를 도입하는데 약 100억엔(약 945억원)에 가까운 비용이 든다. 대형 크레인을 제조하는 업체는 일본 내 단 한 곳 뿐으로 납기가 6~7년에 달한다.
이에 업계는 장기 납기에 대응할 수 있는 형태의 기금 조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일본조선공업회의는 해당 기금을 LNG 운반선 건조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LNG 운반선은 과거 일본이 기술력을 기반으로 집중 육성한 고부가가치 선박이었다. 그러나 한국 조선사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2019년 이후 건조가 중단된 상태다.
일본 업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추진하는 LNG 수입 확대에 필수적인 선박으로서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 조선회사가 규모가 큰 곳이라도 연간 70억~80억 엔 수준의 설비투자가 한계였다”며 “수천억 엔 단위의 투자 규모는 들어본 적도 없는 수준으로, 일본 조선업계로서는 큰 결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 때 세계 시장 점유율 50%였던 일본 조선업 점유율은 한국과 중국에 밀려 10%대로 하락한 상태다. 수주 점유율은 이미 10%를 밑돌고 있다. 인구 감소에 따른 심각한 인력 부족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 해사국에 따르면 조선업 종사자 수는 2016년 약 9만1000명에서 2025년에는 약 7만7000명으로 약 15% 감소할 전망이다.
노동집약적 산업인 조선업은 인력이 건조 능력을 좌우하기 때문에 조선업계는 외국인을 포함한 인재 확보를 위해 정부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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