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국내 증시의 공매도 잔고가 역대 최고치로 올라섰다. 상승세가 가팔라질수록 조정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는 양상이다. 증시 상승을 주도해온 반도체와 이차전지 대형주를 중심으로 대차거래가 빠르게 불어나며 단기 과열 경고등이 켜진 모습이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유가증권시장 공매도 순보유 잔액은 12조560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대규모로 지난 3월 공매도 전면 재개 이후 처음으로 12조원을 넘어섰다.
공매도 잔액은 재개 직후인 지난 3월말 3조9155억원에서 7개월 만에 약 220% 증가했다. 월별로는 4월 6조211억원, 6월 8조6726억원, 9월 11조4066억원으로 매달 꾸준히 확대됐다. 코스닥시장 잔고도 같은 기간 1조7933억원에서 세 배 가까이 불어났다. 공매도 규모가 불과 반년 사이 세 배 이상 늘어난 것은 지수 상승세 속에 차익 실현 수요가 누적되고 있어서다.
공매도 선행지표로 꼽히는 대차거래 잔액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지난 22일 기준 117조8191억원으로 전월(102조4735억원) 대비 약 15% 늘었다. 지난 5월말 78조5885억원과 비교하면 다섯 달 만에 50% 가까이 증가했다. 대차 상위 종목은 SK하이닉스 11조7326억원, 삼성전자 9조7820억원, LG에너지솔루션 3조3806억원, 셀트리온 2조3406억원, 한미반도체 2조2058억원 순이다. 상위 종목 대부분은 최근 한 달 새 30~60% 가까이 오른 반도체·이차전지 관련주로 주가 상승세가 대차 수요 확대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장세에서는 '라운드피겨' 구간을 중심으로 차익실현 분위기가 일부 확산되고 있다. 라운드피겨는 10만원, 50만원처럼 투자자들이 심리적으로 매도 압박을 크게 느끼는 가격대다. 코스피가 3900선을 눈앞에 두고 상승 탄력이 둔화되면서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매물이 쏟아졌고, SK하이닉스가 50만원, 삼성전자가 10만원 선에 근접하며 저항선이 형성됐다. 증권주 등 단기간 급등한 종목군에서도 차익 매물이 잇따랐으며, 외환시장 변동성과 달러 강세 속에서 외국인 수급이 둔화된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증권가는 국내 증시의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업 실적 회복세가 뚜렷하고, 이차전지 업종의 수출 개선과 정책 모멘텀 등으로 중장기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세제 개편과 주주환원 확대 정책이 투자심리를 지지하는 가운데, 실적 성장세와 유동성 여건이 유지된다면 코스피 상승 추세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황준호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로 갈수록 금리인하 및 유동성 효과 체감이 높아지며 물가 우려, AI 고평가 논란, 무역분쟁 등 변수가 발생할 수 있으나 연말까지 우상향을 예상한다"며 "다만 내수 회복이 느리게 이뤄지고 있는 점은 증시 상단을 제한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koreanbae@fnnews.com 배한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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