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굿뉴스' 리뷰
변성현 감독, 설경구·홍경·류승범 출연
변성현 감독, 설경구·홍경·류승범 출연
홍세화는 책 ‘생각의 좌표’에서 사람은 ‘합리화하는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사람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가 틀렸다는 것. 지난해 4월 세상을 등진 홍세화는 이념 과잉의 시대를 꿋꿋하게 살아낸 아나키스트였다. 그의 아버지는 세계평화(世界平和)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세화'라는 이름을 지었다.
영화 ‘굿뉴스’ 속 관제사 서고명(홍경) 중위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두 다리를 잃었다. 국군이 던진 수류탄은 부하의 다리마저 절단냈다.
홍세화는 한국전쟁 당시 자행된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의 생존자다. 그가 대학 새내기였던 1966년 9월 친척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홍세화는 그 이야기가 자신의 ‘사유체계의 바탕을 무너뜨린 인생의 분기점’이었다고 술회했다.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1950년 9월 아산 황골에서 국군에 의해 일어난 학살 당시 3살이었던 본인이 어머니, 동생과 함께 있었다는 이야기. 새지기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남양 홍씨 가문은 가족 단위로 죽어 나갔다. 홍세화 가족은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
뉴스타파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보고서를 전수조사한 보도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학살당한 민간인은 5만7882명에 달한다. 최소한 확인된 죽음이다. 어떤 이들은 실제 피해규모가 100만명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전쟁은 이념 대결과 냉전이 빚어냈다. 홍세화는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당시 새지기의 공회당 창고를 오슈비엥침(아우슈비츠) 절멸 수용소에 비유했다. 그때의 경험은 그의 삶이 반항과 불온으로 향하게 했다.
아무개는 '큰형님' 미국과 납치된 국민에 발을 동동거리는 일본에도 생색을 내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김포공항을 평양 공항으로 탈바꿈시킨 채 납치범들을 속이자는 것. 고문과 납치로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빨갱이로 만드는 일이 일상인 중앙정보부에게 공항 곳곳에 빨간 페인트를 덧칠하는 일은 오히려 간단한 편이다. 공항은 말도 신념도 없으니까.
그러나 ‘그냥 철없는 애들’은 아니었던 적군파는 김포와 평양의 간극을 눈치챈다. 북조선에 흑인은 없을테니. 적군파는 ‘데드라인’을 내일 정오로 설정했다. 지금 급유하고 평양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라, 그렇지 않으면 자폭하겠다고 협박한다.
“이것은 실례 정도가 아니고, 군사 도발이여!...너도 알제, 이? 이건 치킨게임이다, 이. 절대 못 터트리니께! 먼저 연락하덜 말어. 대답 안허냐?”
치킨게임은 게임이론의 다양한 모델 중 하나다. 게임이론은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존재라는 가정 속에 세워졌다. 다양한 모델이 있지만 죄수의 딜레마와 제로섬게임, 비제로섬게임 등이 유명하다. 게임이론 관련 연구와 내시 균형으로 유명한 199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존 내시의 삶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 알려져 있다.
치킨런 게임이라고도 불리는 치킨게임(chicken game) 역시 뉴스와 신문에서 자주 인용된다. 두 명의 운전자가 각각 마주보고 서로를 향해 엑셀을 밟으며 대치한 상황에서 ‘누가 먼저 핸들을 돌릴 것인가’를 지켜보는 게임이다. 상대가 계속 돌진할 때 먼저 겁을 먹고 핸들을 돌리면 게임에서 진다. 겁쟁이가 되는 것이다. 반면 핸들을 돌리지 않고 돌진한 사람이 이기게 된다. 내가 브레이크도 밟지 않고 핸들도 꺾지 않았는데 상대가 핸들을 틀면 이길 수 있다. 만약 모두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면 '다 죽을 수'밖에. 먼저 핸들을 돌린 사람이 겁쟁이가 된다는 의미로 영어의 소릿값이 비슷한 겁쟁이(치킨) 게임이라고도 부른다.
과점 상태의 산업에서 치킨게임은 자주 발견된다. 증권사간 거래수수료 인하 경쟁, 온라인쇼핑몰·택배회사와 쿠팡의 배송비 경쟁 등이 유명하다. 원가 이하의 출혈 경쟁으로 상대 기업보다 더 싸게 팔면서 가격인하 경쟁을 펼친다. 이때 치킨게임에서 먼저 핸들을 돌린 기업, 즉 경쟁을 이겨내지 못한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된다. 그리고 나면 남은 기업의 독점력은 더욱 확대된다. 이때문에 치킨게임이 벌어지면 핸들과 브레이크를 아예 뽑아버리는 전략을 세우는 기업도 있다.
신념이나 이념에 따라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정치적 상황도 ‘치킨게임’이다. 과거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벌였던 군비경쟁도 치킨게임에 비유되곤 했다.
거대한 참치떼가 시속 160㎞로 바다를 누빌 때 새우들은 몸서리 친다. 등이라도 터질까 걱정이다. 대뱃살과 중뱃살 두툼한 참치초밥과 장어초밥 사이에 새초롬하게 놓인 새우초밥 한 피스. 영화 속 이 장면이 미국과 소련 일본과 중국이라는 세계 초강대국 사이에 허리도 꺾인 채 누워있는 한반도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mj@fnnews.com 박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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