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 횡령·배임 범죄수익 보전액 33배 폭증…배임죄 폐지 '엇갈린 시선'

김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27 15:18

수정 2025.10.27 15:26

올 7월 기준 횡령·배임 범죄수익 보전액 1610억원
피해 회복 목적이나 기업 입장에선 부담
형법상 배임죄 폐지 논의 속 '처벌 공백' 우려도
"혁신 막는 법은 손질해야" vs "사익 추구형 배임은 처벌 필요"
(출처=연합뉴스)
(출처=연합뉴스)

최근 6년 횡령·배임 범죄수익 보전 현황
(건, 억원)
건수 금액
‘20년 3 48.4
‘21년 10 191
‘22년 33 648
‘23년 37 582
‘24년 57 223
‘25년(7월) 25 1610
(박정현 의원실, 경찰청)

[파이낸셜뉴스] 최근 6년 동안 경찰이 몰수·추징보전한 횡령·배임 관련 범죄수익이 30배 넘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회복과 범죄 억제라는 순기능이 있지만, 기업과 경영진 입장에선 자금이 장기간 묶이고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등 구조적·심리적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2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범죄수익 보전 현황'에 따르면, 횡령·배임 사건의 범죄수익 보전 금액은 2020년 48억4000만원에서 올해 7월 기준 1610억원으로 33배(약 3227%) 급증했다. 같은 기간 보전 건수는 3건에서 25건으로 8배 늘었으며, 1건 당 평균 보전 금액도 16억원에서 64억원으로 4배가량 뛰었다.

범죄수익 보전은 ‘범죄 혐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자산을 판결 전까지 동결해 처분을 막는 절차’를 말한다.

법원이 수사기관의 신청을 받아들여 '보전 명령 인용'을 하면 개인 자산은 물론 회사 자금과 관련이 있을 경우 운영 자금도 마음대로 쓸 수 없다.

만약 수사가 길어질 경우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해당 재산은 매각·양도·담보 설정 등 일체의 처분이 금지된다. 다시 말해 무죄로 입증될 때까지 부동산, 주식, 예금 등의 자산이 묶여 버린다는 의미다. 대규모 프로젝트나 해외 거래를 진행 중인 기업들 입장에선 '잠재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배임 사건은 고의와 손해 인식 등 판단 요소가 많아 결론이 나기까지 통상 장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그 사이 자금이 묶이면 기업 유동성 악화와 경영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황현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최근 몇 년 간 배임 혐의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생긴 손해까지 형사 책임으로 다투는 사례가 늘었다"며 "수사 단계에서 회사 자산이 동결되면 실제 경영이 마비되거나 외부 투자까지 위축되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배임죄는 일반적으로 ‘재물’을 대상으로 하는 횡령죄와 달리, 돈을 직접 빼돌리지 않아도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성립할 수 있기 때문에 ‘경영상 판단의 잘못’인지, ‘고의적 배임’인지 경계가 다소 모호하다.

이로 인해 배임죄는 법정에서도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이는 대표적 죄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만큼 기업 입장에선 법원 판결 전에 재산이 묶이는 불합리한 상황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

형법상 배임죄의 최대 형량은 5년이지만, 배임을 통한 이득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으로 무기징역까지 가능토록 규정한 처벌 규정도 사실상 족쇄다.

배임죄 폐지 추진을 두고 정치권에서 "정상적인 경영 판단까지 범죄로 몰아 기업 운영과 투자에 부담을 줬던 배임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과 "행정제재나 민사소송만으로는 피해 회복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반론이 맞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배임죄는 ‘수사 단계에서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한’ 법원의 결정을 전제로 하므로,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피해 회복을 담보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예컨대 경영자가 자신의 개인 소유 건물을 회사 명의로 임차하면서 시세보다 훨씬 비싼 임대료를 책정해 회사 자금을 지출하게 하는 경우 등 명백한 사적 이익 추구 행위까지 법리상 배임이 아닌 민사 문제로만 남는다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아울러 통계에서 1건 당 보전 규모가 커졌다는 것은 횡령·배임의 대형화, 조직화 조짐으로도 풀이되는 만큼,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배임죄 폐지의 취지에는 찬성하나, 대체 입법을 통해 처벌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승민 법무법인 세움 변호사는 "배임죄 폐지가 경영자들의 혁신적인 시도에 대한 방해를 막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면서도 "기업 경영 판단과 관련된 영역을 제외한 이중매매나 개인 이익을 노린 거래 등은 별도의 법으로 규율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