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는 29일 한미정상회담 직전까지 양국간 관세협상이 타결되지 못하면서 APEC 기간에 노딜(협상 무산)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따라 협상을 APEC 이후로 연장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이 대통령이 주최국 의장직을 맡고 있는 APEC의 성공적 개최가 최우선인 상황에서 관세협상에만 매달릴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한미 정상간 '톱 다운' 방식의 극적 타결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승부사 기질이 뚜렷해 정상회담이 끝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8일 공식 일정을 잡지 않고 참모진 보고와 비공식 내부 회의를 잇따라 개최했다. 매주 화요일 주재해온 국무회의도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사회권을 넘기고 한미 정상회담 및 APEC 정상회의 준비에 집중했다.
또한 정부는 이날 일본에서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본도 5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방식을 두고 미일 양국은 갈등을 빚어왔다. 아울러 국내총생산(GDP) 대비 3.5%로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는 미국 측 요구를 일본이 어느 정도 수용할지 등도 우리 정부의 안보 관련 대미 협상에 참고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 후 지난 27일 일본을 방문했다. 미일 정상회담 등 2박 3일 일정을 마친 뒤 29일 방한해 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 대통령인 동맹국인 일본·유럽연합(EU)과 비교해 과도한 관세 적용의 부당함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떻게 설득할지도 관심사다.
관세·투자·안보를 한꺼번에 묶는 패키지 협상이 무산되면 이미 조율이 끝난 안보 분야만 타결하는 방안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패키지 협상 타결 불발시 APEC 이후로 추가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협상 지연이 반드시 실패는 아니라고 언급하면서 APEC 계기에 '노딜' 가능성도 암시했다. 이 대통령은 "모든 것이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면서 "한국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정도가 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현주 국가안보실 3차장도 "이번(APEC 정상회의)에 바로 타결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관세 협상은 이번에 타결될 지 여부가 불투명하고, 우리가 주최하는 APEC 성공이 최우선 목표"라며 "국익 우선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APEC 이후로 협상이 연장되면 연말까지 이어지는 장기 교착 국면도 우려된다.
한미 관세 협상은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와 상호관세 인하(한국산 제품 관세 25%→15%)라는 큰 틀의 잠정 합의 뒤, 세부 내용에서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직접 현금 투자하는 비율을 대폭 높이길 요구하고, 투자처 선정도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직접투자 비중을 5% 안팎으로 최소화해 대부분을 '보증·대출' 같은 펀드 방식으로 하며, 투자처 선정이나 배당 기준에도 한국 안을 반영하려 한다.
직접 투자액 3500억 달러라는 규모는 한국 외환보유액의 약 83%에 달해, 단기 현금 투자시 외환시장 혼란 및 경제 충격을 우려가 된다. 무제한 통화스와프 등 안전장치 도입을 요구했지만 미국측이 동의하지 않았다. 추가협상안으로 연간 250억달러씩 8년간 지불하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타결되지 못했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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