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모월양조장' 김원호 대표의 '술이야기']
2014년 협동조합 모월 시작…조합원은 가족·친구 등 21명
대표 술 '모월 인'…대통령상에 세계 3대 주류 품평회 석권
물 좋은 원주에서 원주쌀로 만든 술…저온 발효에 옹기 숙성
"식량안보 지키고 농가 돕는 좋은 방법…우리 쌀로 만든 술"
[파이낸셜뉴스 원주=서윤경 기자] 프랑스 서남부 코냑에서 포도주를 증류해 만든 브랜디 코냑(꼬냑·Cognac), 프랑스 북동부 상파뉴에서 만든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 샴페인(Champagne).
그리고 용설란 중 '고급'으로 꼽히는 블루 아가베의 주산지 멕시코 하리스코주 테킬라에서 전통 방식으로 생산하는 증류주 테킬라(데킬라·Tequila)까지.
지역명은, 그대로 '술'의 정체성이 됐다.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의 '모월양조장'도 그런 술을 만들고 싶었다.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재료를 사용해, 그 지역의 정체성을 품은 술 말이다.
지난 1일 모월양조장에서 만난 협동조합 모월의 김원호 대표(55)에게 '술을 만들게 된 이유'를 물으니 나온 답이기도 했다. 김 대표의 술 이야기를 듣기 위해 원주를 찾았다.
세계도 인정한 '한국 소주'
모월양조장은 치악산과 백운산 자락에 둘러싸인 신촌리, 그곳에 있었다.
"청정지역 강원의 맑은 물로 키워낸 깨끗하고 맛있는 쌀, ‘토토미’로 빚어낸 소주"라는 모월의 홍보문구 그대로였다.
'어머니(母)와 달(月)'을 뜻하는 모월이란 이름도 과거 치악산과 원주를 부르던 '모월산', '모월'에서 가져왔다. '모든 걸 품어주는 어머니처럼, 어둠 속 누구에게나 밝은 빛을 밝혀주는 달처럼, 누구라도 품어주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대표 술은 알코올 도수 41%의 ‘모월 인’이다. 2020년 최고의 술을 가리는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고 지난해엔 영국의 'IWSC(International Wine & Spirit Competition)',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세계 주류 경연대회'(SFWSC), 벨기에의 '몽드 셀렉션'(Monde Selection)’ 등 세계 3대 주류 품평회를 석권했다.
‘모월 로(25%)’, ‘나랑(19%)’ 등 증류식 소주와 ‘모월 연(13%)’, ‘모월 청(16%)’ 등 약주도 있다.
박재범의 '원소주'를 비롯해 ‘경복궁 소주’, ‘코리진’ 등 여러 업체와 협업도 했고 중국, 미국, 뉴질랜드 등 수출도 계획하고 있다.
그냥 '소주'가 아니었다
맛을 인정받은 모월 소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기 위해 1층 양조장으로 갔다. 원주쌀 '토토미'부터 보였다. 씻고 쪄낸 토토미에 밀 누룩, 지하 100m 화강 암반층에서 채취한 암반수로만 빚은 게 모월의 술이다.
김 대표는 "큰 산이 있어 마르지 않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 원주고 그 물로 키운 쌀이 바로 토토미"라며 "치악산 아래 서늘한 기온에 저온 장기 발효와 숙성에도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재료, 환경과 함께 만드는 방법도 남다르다.
두 번 술을 담그는 이양주 방식을 택해 누룩의 양을 최소화했다. 덧술을 할 때 1차로 담근 밑술의 효모 개체 수를 현미경으로 확인해 누룩의 비율을 5% 정도로 맞추다 보니 누룩취가 거의 없다.
누룩이 많지 않아 2주면 될 발효 시간은 길다. 20℃ 저온에서 3∼4개월 발효한다.
다음은 맑은 술을 뽑아내는 증류 과정이다. 쌀의 감칠맛과 향을 보존하기 위해 상압식 기법을 채택했다. 상압식은 일반 대기압(1기압)에서 증류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높은 온도에서 증류가 이뤄져 강하고 복합적인 맛, 풍부한 바디를 갖는 게 특징이다. 증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황 화합물을 흡착시키기 위해 증류기는 동(銅) 재질을 사용했다.
맛을 위해 '과감한 결단'도 했다.
김 대표는 "메탄올 등 유해 성분이 있는 증류 초반의 '초류', 쓴맛과 잡내가 나는 끝 부분 '후류'는 사용하지 않는다"며 "66~75% 사이 본류만 사용해 숙취나 체내 부담이 적다"고 전했다.
증류 과정을 거치면 41% 이상의 술은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옹기에 담아 길게는 6개월간 숙성한다. 25% 미만은 이 과정을 건너 뛴다.
농부 그리고 술 빚는 사람
정성으로 만들어진 모월의 술은 하마터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2014년 협동조합 모월을 세우고 5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 김 대표가 "올해까지만 버티고 접자"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김 대표는 자신이 술을 빚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 엔지니어로 일하다 회사를 퇴사한 뒤엔 벤처기업을 이끌었다. 그러다 아버지의 논이 보이고, 쌀이 보였다. 취미 삼아 그 쌀로 술을 만들자며 친구들과 세운 게 바로 협동조합 모월이었다. 현재 모월의 조합원은 김 대표의 가족과 동창생, 지인까지 21명이다.
시작부터 쉽지는 않았다. 먼저 전통주를 제조·판매하려면 주류제조면허와 식품제조가공업 인허가를 받아야 했다. 제조 시설을 만들고 설비내역 신고서와 용기검정신청서까지 완비한 뒤 주류제조면허신청서를 세무서에 제출했다.
2주마다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가 있는 제주로 갔다.
김 대표는 "주말에 내려가 월요일 출근 시간에 맞춰 센터를 찾으니 직원들이 '그만 오라'고 할 정도였다"며 "아랑곳하지 않고 센터를 찾아 우리 술을 알렸고 세 번째 도전 만에 면허를 취득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품질 좋은 술을 만드는 것이었다. 2017년 '모월 인'과 '모월 로'를 선보였고 이듬해 술 품질 인증도 획득했다. 2019년엔 아버지의 밭이었던 지금의 땅에 모월양조장도 신축했다.
자리를 잡아가던 모월에 위기가 찾아왔다. 코로나 팬데믹이었다. 좋은 술을 만들고도 팔 길이 없었다.
김 대표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양조장을 지키며 올해(2020년)까지만 버티다가 안 되면 그만 두자고 마음먹었다"며 당시 심경을 전했다.
그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대통령상 수상이었다. 사람들이 모월의 술을 찾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아버지가 농사지은 쌀로 술을 빚었는데 부족해 동네 논에서 재배한 쌀로 보충했다. 이후 원주농협에서 쌀을 공급받았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주변 농가와 원주농협에서 받는 쌀이 각각 15%, 80%를 차지한다. 직접 재배한 쌀의 비중은 5%에 불과하다.
술 만드는 건 우리 쌀 지키는 것
술맛을 인정받았은 양조장의 다음 목표가 궁금했다.
김 대표는 "우리 논과 우리 쌀을 지키려면 술을 만들어야 한다"며 필리핀과 일본 이야기를 꺼냈다.
필리핀은 삼모작·사모작이 가능해 쌀이 풍부했는데 지금은 세계 2위의 쌀 수입국이 됐다. 관광업에 집중하면서 논과 농부가 사라진 게 문제였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일본은 정반대였다. 김 대표는 "니가타현은 간척사업을 통해 벼농사를 지을 땅을 확보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고시히카리 쌀을 생산하는 곳"이라며 "이 쌀로 만든 게 대표적인 사케 브랜드인 구보타"라고 강조했다.
이어 "니가타에서 사케를 만드는 데 쓰고 있는 이 쌀을 식량으로 사용하면 쌀 자급률이 400~500%가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라며 "사케를 만들어 농가 소득을 높이면서 식량 안보까지 지키는 셈"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한국의 상황을 살폈다.
김 대표는 "'논은 밭이 될 수 있지만, 밭은 논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매년 1, 2월이면 농림부가 '밭으로 전환하면 장려금을 준다'는 문자를 보낸다"며 "논과 쌀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도 필리핀처럼 될 수 있다. 모월을 통해 원주의 쌀과 논을 지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또 다른 목표도 있다. 모월이라는 원주의 옛 이름이 데킬라, 꼬냑, 샴페인처럼 술 자체로 불리는 것이다.
김 대표는 “원주에서 수매되는 쌀 약 1만5000t 중 10%를 소비하는 게 목표다. 구보타를 마시려고 일본을 찾는 것처럼 그 지역에 가야 마실 수 있는 그런 술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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