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이대목동병원-한림대 공동연구
임종 3개월 전 광범위항생제 집중 사용 경향
불필요 항생제 투여, 환자 고통 키울 수 있어
임종 3개월 전 광범위항생제 집중 사용 경향
불필요 항생제 투여, 환자 고통 키울 수 있어
[파이낸셜뉴스] 항생제 내성균 치료에 쓰이는 ‘광범위항생제’가 말기 암환자의 생애 말기, 특히 임종 3개월 전부터 집중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항생제 투여가 환자의 고통을 키우고 존엄한 임종을 방해할 수 있다며, 환자 중심의 ‘완화의료적 항생제 사용 지침’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29일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유신혜 서울대병원 교수(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이대목동병원 김정한 교수, 한림대 심진아 교수(공동 교신저자)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2002~2021년)에 등록된 진행암 환자 51만 5천여 명의 임종 전 6개월간 광범위항생제 사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전체 환자의 55.9%가 임종 전 6개월간 광범위항생제를 사용했으며, 특히 사용률은 ‘임종 1~3개월 전’, 사용량은 ‘임종 2주~1개월 전’에 가장 높았다. 즉, 환자의 신체 기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입원이 잦아지는 시기부터 항생제 처방이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광범위항생제 4종(페니실린계, 세팔로스포린계, 카바페넴계, 글리코펩타이드계)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이들 약물은 강력한 항균력을 가지지만, 감염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아도 단순 발열이나 염증 수치 상승만으로 투여되는 사례가 많다.
이에 따라 내성균 발생, 부작용, 이차 감염 위험이 높아져 ‘치료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암 유형별로는 혈액암 환자(비호지킨 림프종·백혈병·다발성 골수종)가 고형암 환자(폐암·간암·대장암 등)보다 광범위항생제 사용률과 사용량이 모두 높았다. 특히 백혈병 환자의 임종 직전 사용률은 폐암 환자보다 1.5배, 사용량은 1.21배 높았다.
유신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진행암 환자의 생애말기 항생제 사용 패턴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사례”라며 “향후 항생제 사용 기준과 완화의료 정책 수립에 근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한 교수는 “말기라도 환자에게 명확한 이익이 있다면 항생제 사용이 타당하지만, 무분별한 투여는 부작용을 키우고 다제내성균을 유발해 존엄한 죽음을 방해할 수 있다”며 “환자의 가치와 돌봄 목표에 기반한 충분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임종기 의료의 새로운 방향으로 ‘항생제 사용의 완화의료적 접근’을 제안했다. 생명을 연장하기보다 고통을 최소화하고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항생제 처방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부의 ‘환자 중심 의료기술 최적화 연구사업’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논문은 미국의학협회 학술지 'JAMA Network Open'(IF 13.8) 최신호에 게재됐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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