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방

첫 관문 통과에 20년 이상 걸린 원자력추진잠수함 [fn기고]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31 06:30

수정 2025.10.31 06:30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파이낸셜뉴스] 한국은 아주 짧은 기간 내에 디젤잠수함 작전운용의 강국이자 K-잠수함 건조의 강국이 되었다. 반면 원자력추진잠수함은 좌절과 실패로 얼룩진 그야말로 역경의 전력이었다. 원자력추진잠수함 확보계획인 362사업이 은밀히 추진되었지만 2003년 외부에 공개되면서 크게 파장이 일면서 좌초된 바 있다. 20여년이 흐른 2020년대 초 원자력추진잠수함 확보계획이 재추진되었지만, 미국의 싸늘한 반응으로 한미 양국의 정치적 결단인 첫 관문은 넘지 못했다. 특히 미국은 한국이 원자력추진잠수함을 확보하더라도 한반도 붙박이형 작전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한국이 서태평양으로 임무영역을 확장하여 미국의 역내 안정 역할에도 적극 동참하는 방식으로 시너지를 창출하는 기대는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APEC 계기 한미정상회담에서 정상 담판 방식으로 원자력추진잠수함이 테이블에 올랐고, 트럼프 미 대통령은 원자력추진잠수함 첫 관문을 여는 데 동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1기 때 그랬고 2기 때도 마찬가지로 모두 리스크와 도전이 공존한다. 지나친 자국우선주의로 동맹 리스크를 높여 동맹 피로감과 심지어 동맹 불신까지 등장하는 함정이 도사린다. 그런데 이 리스크를 잘 관리해서 동맹을 지켜내면 리스크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지점도 적지 않다. 트럼프 스타일은 톱-다운 방식이라 자신이 결정하면 행정부가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패스트트랙이 가능하고, 담판이라는 플랫폼을 잘 활용하면 담판이 없을때는 제시할 수 없었던 회심의 카드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한미 미사일 지침 폐지는 리스크를 기회요소로 전환한 사례였고, 이번 원자력추진잠수함 한미 공조 성사는 트럼프 2기 기회요소 전환의 대표적 사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특히 이번 성공사례를 잘 참고하여 앞으로도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리스크를 기회요소로 전환할 아이템을 지속 발굴하여 안보와 국익을 챙겨나가야 한다.

한미 원자력추진잠수함 공조는 ‘협상전략’과 ‘전략적 환경’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협상 차원에서 본다면 이번 원자력 관련 한미 공조는 ‘아이템 통합’ 전략이 가동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미 간 원자력 협력이 마스가(MASGA) 2.0 수준의 윈-윈 사업으로 주목을 받는 유리한 환경을 적극 활용하여 하나의 딜에 3가지를 통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1) 현 한미 원자력협정 실행력 강화로 개정 전 핵연료 확보 환경 조성, 2)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추진 본격화, 3) 원자력추진잠수함 확보계획 공식화라는 3가지 아이템을 한 번에 테이블이 올린 것이다. 미국에 한 가지만 요청하면 추후에 이미 요구를 들어주었는데 또 요구하냐며 한국의 추가 거래를 요구할 시 소진하게 될 협상력 상황을 차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미중 강대국 경쟁이 치열해지는 전략적 환경도 미국이 한국의 원자력추진잠수함 추진에 힘을 실어주는 동력이 된 것을 주지해야 한다. 미국은 서태평양에서 대중국견제를 통해 해양통제를 달성해야 패권 지위를 지켜낼 수 있다고 판단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용어로 풀이한다면 인도-태평양 주도권을 지속적으로 장악해야 MAGA 목표 달성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처럼 원자력추진잠수함 공조가 ‘협상’과 ‘전략환경’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 결과라는 측면에서 숙제도 주어진 셈이다. 특히 한국의 역외 역할 확장이 더 중요해졌다. 원자력추진잠수함을 한반도 전구 내에서만 위치시켜 대북작전용으로 사용하는 축소형 작전을 경계해야 한다.
한반도 붙박이 전력으로 전락시키는 메시지가 발신되면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원자력추진잠수함 확보 사업에 안정적인 한미 공조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원자력추진잠수함을 한반도 작전을 넘어 서태평양 해상교통로(SLOC) 보호 등 확장형 임무 전력으로 규정하는 ‘운영의 설계도’ 마련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러한 노력이 치밀하게 전개되면 첫 관문이라는 동력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사업인 항공모함 구상도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다.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