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출판

눈치 보는 한국 사회… 자유롭게 생각하고 대화해야 진짜 공감 [내책 톺아보기]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30 18:15

수정 2025.10.30 18:15

명선혜 번역가가 전하는 거짓 공감
거짓 공감 /제나라 네렌버그 / 지식의숲
거짓 공감 /제나라 네렌버그 / 지식의숲
북극권의 스발바르 제도에는 전 세계 식물 종자의 복제본을 보관하는 국제 종자 저장고가 있다. 혹시라도 지구의 식물이 멸종하더라도, 인류는 그곳에서 생명의 씨앗을 되살릴 수 있다.

제나라 네렌버그는 이 저장고를 하나의 은유로 삼는다. 다양성을 잃어버린 사회, 획일화된 사고와 자기검열이 만연한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사유의 다양성'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인간의 사상과 언어, 예술 역시 하나의 지적 생태계이며, 이를 보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정신은 결국 침묵 속에서 사라질 것이라 경고한다.



도서 '거짓 공감'은 현대인이 빠져 있는 '자기침묵'과 '집단사고'의 구조를 심리학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저자는 타인과의 대화가 점점 사라지고,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기보다 눈치를 보는 사회 분위기를 '현대적 질병'으로 진단한다. 공감은 단순히 타인의 감정을 그대로 흡수하는 감정 이입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 바탕 위에서 타인과 교감하는 능동적 행위라고 말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공감'을 감정의 일체화가 아닌 사고의 자율성에서 출발하는 윤리적 실천으로 제시한다는 데 있다. 네렌버그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녀의 삶과 작업 전반에도 깊이 스며 있다. 그녀는 버드 대학교와 UC 버클리를 졸업한 뒤, 심리학·수사학·사고의 다양성을 주제로 꾸준히 글을 써왔다. 특히 인간이 가진 사고의 차이와 그로 인한 오해, 그리고 대화의 단절을 탐구해 온 경험은 '거짓 공감'의 뿌리가 되었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신경다양성'과 '자기검열'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다. 인간의 인지와 정서가 본래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타인의 생각과 충돌을 견디며 건강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그러나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은 개인의 의견을 세분화하고, 집단의 기준에 맞지 않는 발언을 '위험한 표현'으로 간주하는 구조를 강화시켰다.

그 결과 사람들은 오해받을까 봐 스스로 말을 삼키며, '자기침묵'이라는 내면의 검열을 습관처럼 수행하게 된다. 네렌버그는 이러한 현상이 개인의 정신 건강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민주적 사고를 훼손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생각을 표현할 용기'와 '불편함을 견디는 인내심'을 새로운 시대의 필수 덕목으로 제시한다.

도서 '거짓 공감'은 감정적 호소보다는 분석과 관찰의 언어로, 인간이 왜 침묵하게 되는지를 탐색한다. 저자는 비판적 사고의 회복을 단순히 '발언의 자유'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분별하고, 타인의 시각을 이해하며, 다름 속에서도 대화를 이어가는 능동적 지성의 회복이다. 네렌버그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란 "두려움이 없는 자유"가 아니라, 두려움을 인식하면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용기에 있다.
결국 '거짓 공감'은 사유의 자유와 공감의 진정성을 회복하려는 선언문과도 같다.

저자는 침묵과 편향이 짙게 드리운 시대 속에서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다름을 존중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자, 사유의 불씨를 지켜내려는 우리의 마지막 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