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아시아/호주

APEC 폐막..일본 언론 평가는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02 15:19

수정 2025.11.02 15:19

(출처=연합뉴스)
(출처=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첫 해외 순방 내용
날짜 장소
10월 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20분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 20분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20분
10월 28일 일본 도쿄/미일 정상회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1시간 30분
10월 30일~11월 1일 한국 경주 이재명 대통령 45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30분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20분
(니혼게이자이신문)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지난 1일 정상 선언문을 채택하며 폐막한 가운데 일본 언론에서는 자유무역 촉진이라는 APEC 기본 이념이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과거 정상 선언문과 달리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 '규칙에 기반한 다자간 무역 체제' 등의 표현도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에서도 중국의 대두 수입 재개와 희토류 공급 재개 합의를 도출하는데 그쳤을 뿐 본래 목표였던 국제 무역 불균형 시정에서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APEC 정상 선언문 다자주의 후퇴
이번 APEC 정상 선언문은 과거와 달리 대폭적인 문구 변경이 나타났다.

선언문에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성장과 번영을 위해 강력한 무역과 투자가 필수적이며 경제적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고 명시했다.



지난해 정상 선언문은 "WTO를 중심으로 한 규칙에 기반한 다자간 무역 체제를 지지한다", "(무역이)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공정하고, 차별이 없으며, 투명하고, 포용적이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고 표현했지만 이번 선언문에는 이같은 문구가 빠졌다.

다만 동시에 발표된 APEC 각료회의 공동성명에서는 "WTO의 중요성을 인식한다"고 언급했다.

아사히신문은 이같은 문구 변경에 대해 "각국과의 무역수지나 협상을 토대로 개별적으로 관세율을 결정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이 다자 협력을 원칙으로 하는 WTO 규칙과 맞지 않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번 APEC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은 폐막 후 기자회견에서 정상 선언문 조정이 지난 1일 아침까지 이어졌다고 밝히며 협상이 난항을 겪었음을 시사했다. APEC 정상 선언문은 회원국 및 지역의 만장일치로 채택되는 것이 원칙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과 지역에 잇달아 부과한 관세 조치는 WTO 규칙 위반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을 대신해 이번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베센트 재무장관은 "미국은 세계적 성장을 위한 기반을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무역 관계를 재균형(rebalance)하고 있다"고 발언하며 관세 조치를 정당화했다.

■결국 승자는 중국? 공급망 전쟁에서 미국 패해
'세기의 담판'으로 꼽히며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중국의 승리'로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지난 1일 '트럼프식 자멸한 대중 무역전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이 비판했다. 닛케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협상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로 △미국 시장의 힘을 과신한 관세 중심주의 △국제 공조를 거부한 미국의 일방주의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단기주의 등 세가지를 꼽았다.

먼저 미국은 '시장을 닫는' 관세전쟁을 벌였지만 공급망을 끊는 중국의 공급망 전쟁'에 밀렸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지만 '구매자'라는 힘만으로는 중국을 굴복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두번째로 중국 뿐 아니라 일본, 유럽 등 동맹국에게도 관세 전쟁을 건 미국의 일방주의를 문제로 꼽았다. 미국은 관세 정책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신흥국)와 멀어졌고 희토류 확보에서도 선진국 동맹과 함께 중국을 포위하는 체제를 만들지 못했다는 평가다.

반면 중국은 군사적으로 러시아·북한과 손잡았고, 경제적으로는 인도를 포함한 상하이협력기구(SCO) 9개국과 무역·투자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단기주의를 취할 수 밖에 없는 트럼프 행정부가 장기전을 각오한 중국에 밀렸다는 지적이다. 주가 하락과 금리 급등을 우려해 강경한 대중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 행정부는 ‘더 조급하게 만들수록 더 큰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상대라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중국은 트럼프 개인의 최대 약점임을 꿰뚫고 있다”는 지적들이 이어졌다.

■다카이치 첫 해외 순방 '선방'..실리외교 보여줘
취임 12일 만에 첫 해외 순방길에 오른 다카이치 총리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취임 전 외교 정책 경험이 없어 '외교력'에 대한 의구심이 나왔지만 이번 기회에 이를 해소한 것으로 보인다. 미일 관계에 대해서는 '흔들림 없는 동맹'을 확인하고 한일 관계서는 안보 협력 등 실리를 위해 현실주의 노선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일 APEC 정상회의를 마친 뒤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이번 해외 순방에 대해 "앞으로 정상 외교를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일본 외교의 지평을 넓히는 발걸음을 착실히 내디딜 수 있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달 28일 도쿄에서 열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절친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아베 전 총리의 후계자임을 전면에 내세우며, 굳건한 미일 동맹 관계를 과시했다.
이어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열린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는 '전략적 호혜관계'를 확인하는 한편 동·남중국해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며 중국의 위압적 행동에 견제구를 날렸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