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전환점 맞는 한미 원자력 협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03 18:08

수정 2025.11.03 18:34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우리나라 원자력이 새로운 전환점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원자력잠수함용 핵연료 공급을 요청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아울러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위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도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고 한다. 이로써 이재명 정부는 1970년 고리 1호기 도입을 계기로 한미 원자력협정을 맺은 이래 금지돼왔던 영역에 진입하는 문을 열었다.

원자력잠수함은 핵연료 농축도가 높을수록 잠항 기간이 길고 원자로를 소형화할 수 있어 잠수함의 공간 활용도가 좋아진다.

그러나 고농축 우라늄은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어 국제적으로 엄격한 관리 대상이므로 우리가 요청한 핵연료는 농축도 20% 미만인 고순도저농축 우라늄(HALEU)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최대 농축 우라늄이나 미국도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HALEU는 개발 붐을 타고 있는 제4세대 원자로형 소형모듈원전(SMR)의 주요 연료이기도 하다. HALEU 확보는 우리나라 차세대 원자로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된다. 비록 원자력잠수함을 두고 핵연료 공급이 논의됐지만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개발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추진은 원자력 산업에도 큰 의미를 지닌다. 원자력은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의 핵심이다. 핵연료는 한 번 장전하면 약 5년간 사용할 수 있어 에너지 안보에 유리하지만, 세계적으로 원전 규모가 확대될수록 우라늄 가격 상승과 국제 정세에 따른 수급불안이 있을 수 있다. 핵연료 공급 자립은 원전 수출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회수해 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으니 우라늄 공급 불안정 시에 효과적 대응수단이 될 수 있다. 또한 재처리 기술은 10만년 이상 장기 보관해야 하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분리하여 장기보관 물량을 크게 감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우라늄 농축을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하고 있으며, 재처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핵연료 기술은 핵무기 개발로 전용될 수 있는 민감기술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각국과 체결한 원자력협정을 통해 농축·재처리 기술 확산을 엄격히 제한해왔으며 다만 극히 예외적으로 핵실험을 감행한 인도가 이를 허용받았고, 비핵국가 중에서는 일본이 유일하게 농축과 재처리 기술을 인정받았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유사한 원자력 이용 상황이지만, 매우 제한적인 연구만 허용된 상태다.

한편 주변을 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은 모두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기술을 확보한 원자력 강국들이다.
우리가 이 기술을 확보한다면 에너지 주권을 강화함은 물론 원자력 분야에서 주변국과 대등한 전략적 위치를 확보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미국은 2050년까지 원전 4배 확대를 목표로 원자력 부흥을 추진 중으로, 이번 APEC 한미 정상회담은 군사적 차원을 넘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확대를 위한 한미 협력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외교와 산업, 기술이 맞물린 한미 원자력협력의 전환점을 만들어 한미동맹을 한 단계 더 높이기 바란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