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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약, 파킨슨병 진행도 막는다"

강중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04 10:11

수정 2025.11.04 10:11

당뇨약, 신경 질환 예방 및 치료제 확장 가능성
당뇨병 치료제가 파킨슨병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를 진행한 세브란스 의료진. 세브란스 제공
당뇨병 치료제가 파킨슨병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를 진행한 세브란스 의료진. 세브란스 제공


[파이낸셜뉴스]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되는 DPP-4 억제제가 파킨슨병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당뇨약이 신경계 질환의 예방·치료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연세대학교 용인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정승호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 의생명과학부 김연주 교수,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이필휴 교수 연구팀은 DPP-4 억제제가 장내에서 파킨슨병 유발 단백질(알파-시누클레인)의 축적을 차단해 발병과 진행을 늦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소화기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인 거트(Gut, 피인용지수 26.2)에 게재됐다.

파킨슨병은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흔한 퇴행성 뇌질환이다.

중뇌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손상되며 떨림·경직·운동 완서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원인 단백질인 알파-시누클레인 응집체가 장에서 만들어져 미주신경을 타고 뇌로 이동한다는 ‘장-뇌 연결 축(gut-brain axis)’ 가설이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은 당뇨병 치료제 시타글립틴 이 이 축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실험을 진행했다. DPP-4 억제제가 혈당 조절 외에도 신경세포를 보호한다는 기존 연구에 기반한 것이다.

연구팀은 독성물질 로테논으로 파킨슨병을 유도한 마우스 모델에 시타글립틴을 투여했다. 그 결과, 시타글립틴 병용군에서는 장내 염증 반응과 알파-시누클레인 축적이 크게 줄었고, 도파민 신경세포의 손상도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운동능력 검사에서도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또한 장내 미생물 분석 결과, 유익균이 증가하고 유해균이 감소하는 변화를 보였다. 이는 시타글립틴이 장내 환경을 조절해 파킨슨병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DPP-4 억제제가 어떤 경로로 작용하는지 밝히기 위해 GLP-1 수용체를 차단한 추가 실험도 진행했다.

GLP-1은 인슐린 분비를 돕는 호르몬으로, DPP-4 억제제의 대표적인 작용 경로다.
그러나 GLP-1 신호를 막은 뒤에도 파킨슨병 진행 억제 효과는 동일하게 유지됐다.

정승호 교수는 “시타글립틴이 GLP-1 대사 경로와 무관하게 장내 면역 및 염증 조절을 통해 작용한다는 강력한 근거를 제시했다”며 “파킨슨병의 병리적 연결고리인 장-뇌 축을 직접 끊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필휴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존 당뇨병 약의 '재창출(drug repurposing)'을 통해 파킨슨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향후 임상연구를 통해 신경퇴행성 질환 치료 전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