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유럽 시장 침체·美관세 타격
악재 겹친 中업체, 동남아 정조준
현지 생산·디지털 유통 등 총공세
삼성·LG, 中 대응책 마련 절실
"고품질·한류에만 의존해선 안돼"
악재 겹친 中업체, 동남아 정조준
현지 생산·디지털 유통 등 총공세
삼성·LG, 中 대응책 마련 절실
"고품질·한류에만 의존해선 안돼"
국내 가전 업계 관계자는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 시장 조사를 다녀온 후 최근 중국 가전의 '굴기(일어섬)'에 대해 두려움을 담아 이같이 말했다. 중국 가전업체들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가전 업계 주요 시장인 북미·유럽 시장이 침체되고 있는데다, 최근 트럼프 발 관세 폭탄으로 타격을 입자 동남아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 본격 공략하고 나서고 있다. 동남아 시장은 중국에게 있어 미래 시장이자 '관세 피난처'로 최근 막대한 투자를 이어나가며 한·일 기업이 양분해 온 동남아 가전 업계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하이얼·하이센스·미디아·TCL 등 중국 주요 가전 공룡들은 소극적인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에서 벗어나 △현지 생산 △디지털 유통 △생활밀착형 제품으로 전방위 공세에 나섰다. '가전 양강'인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동남아 시장에서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품질과 한류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동남아에 퍼지는 '레드 테크'
4일 중국 대표 가전업체 하이얼은 최근 태국 동부 촌부리 주에 동남아 최대 규모의 에어컨 공장을 가동했다. 연간 300만대로 시작해, 2027년 600만대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해당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85% 이상이 동남아 전역과 중동·미국으로 보내진다.
하이얼 외에도 중국 가전 업계 빅3인 하이센스는 태국 동부에 냉장고·세탁기 신공장을 짓고 있다. 내년 중 가동을 시작해 연 260만대를 생산할 예정이다.
미디아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2024년 2·4분기 첫 에어컨을 출하했다. TCL 산하 오마는 태국에 냉동고 30만대, 냉장고 140만대 라인을 마련했으며, 베트남에선 TV·스마트기기 캐파(생산능력)를 키우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생산 현지화는 관세·물류 리스크 분산과 비용 절감, 리드타임 단축으로 직결되고 있다. 생산시설 뿐 아니라 포장·부품·인쇄 등 중국 내 가전 생태계가 한 몸이 돼 동반 진출하면서 원가 경쟁력까지 챙겼다. 2025년 1~4월 하이얼의 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 3개국 백색가전 합산 점유율은 전년 대비 8.2% 증가한 14.3%로 1위를 기록했다.
중국 가전들이 무서운 것은 틱톡을 필두로 유통·마케팅의 디지털화를 통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가전업체들은 쇼피·라자다 같은 종합몰에 틱톡 숍과 크리에이터 협업에 나선 상태다. 하이얼은 플랫폼 2개+틱톡 숍 결합으로 트래픽 풀을 키우고, 하이센스는 인플루언서 공식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때문에 중국 가전업체들의 동남아 전자상거래는 2024년부터 2029년까지 연평균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2029년에는 틱톡 등을 통한 전자상거래 비율이 현재의 4배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틱톡 쇼핑의 전자상거래 비중은 태국 34%, 인도네시아 28%, 베트남 16%, 말레이시아 11%까지 올라왔다.
■현지 맞춤 제품에… "中 싫어도 산다"
중국 가전 업체들은 제품 현지화에도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 가전 업체들은 동남아 지역의 고온다습한 기후와 다원적 문화·종교가 공존한다는 점을 파고들며 범용 표준 모델을 밀어넣는 대신 생활의 불편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현지에서는 '중국에 대한 반감이 있어도 가전만큼은 중국 제품을 선택한다'는 인식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강해지고 있다.
하이얼은 태국 전역의 저수압 문제를 겨냥해 '증압 펌프 세탁기'를 내놨고, 곰팡이 이슈가 잦은 환경을 겨냥해 에어컨 '자체 세정' 기능을 보편화했다. 인도네시아에선 라마단 야간 체온 변화에 맞춰 자동으로 2도씩 올리는 '라마단 모드' 에어컨이 출시됐다. 말레이시아에선 히잡 색상 보존을 위한 전용 세탁 코스를 마련했다.
중국 가전의 최대 약점으로 꼽힌 애프터서비스(AS) 강화에도 나섰다. 하이얼 측은 올해 3·4분기 실적발표 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마케팅·고객·물류·서비스를 하나의 그물로 묶는 '사(四)망 합일' 체계를 현지에 이식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주요 국가에서 현지 제조기지를 운영 중인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단순 수출·제조 기지로서 머무는 데서 더 나아가 현지 시장 공략에도 각별한 공을 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다른 가전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오랜 기간 우수한 품질로 현지인들의 인정을 받아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또 그 딸에게 추천하는 가전으로 자리매김했다"면서 "최근 중국 가전이 현지 MZ세대를 공략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rejune1112@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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