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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한중관계의 전면 복원? 칼을 가는 중국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04 18:14

수정 2025.11.04 18:28

근거없는 한중관계 전면 복원 발표
서해문제·비핵화 등 인식 공유 없어
트럼프 원자력 잠수함 조건부 승인
중국제재 유발할 수 있는 빌미 제공
원자력협상 재개·핵폐기물 재처리
핵원료공급 확보 등 우선 해결해야
주재우 경희대 중국학과 교수
주재우 경희대 중국학과 교수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무난하게 종료됐다. 이후 우리 정부의 국익 중심 외교, 실용외교가 평가받고 있다. '실행하기보다 비판하기가 쉽다'는 말이 있다. 평가는 비판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세계 21개국 원수가 참석한 행사를 준비한 이들의 노고를 폄훼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가진 일련의 양자 정상회담의 결실이 명문화·문서화되지 않아 비평을 피해가기 쉽지 않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은 국빈방문이었다. 지난 10월 24일 저녁 우리 국민은 중국 외교부의 입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 주석의 체류기간이 2박3일에 불과해 물리적으로 국빈방문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APEC 본회의 이틀을 빼면 주어진 시간은 하루도 채 안 됐기 때문이다. 국빈방문의 의례행사인 의장대 사열과 예포 21발 발사가 이뤄졌다. 그러나 공동성명의 발표나 공동기자회견을 소화하기엔 시간이 없어 보였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2017년 이후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다자회의장에서 약식회담을 가진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이번 시 주석의 국빈방문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도 급상승했다. 그런데 시 주석의 국빈방문 결과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입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 공동성명이나 공동기자회견이 없었다. 국빈방문의 핵심 의전 요소가 빠진 상황에서 어쩌면 일부 언론에서 기술했듯 국빈 '예우'가 더 적합한 표현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한중 관계가 전면 복원되었다고 발표했다. 근거는 제공되지 않았다.

이처럼 실체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공동성명을 도출하지 못한 데서 유추할 수 있다. 공동성명은 공동으로 합의한 사항을 발표하는 문건이다. 이를 발표하지 못한 의미는 역으로 합의된 바가 없었다는 반증이다. 우리 측에선 비핵화, 서해 문제 등 우리 국익을 고려한 사안을 제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측이 이들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합의는 고사하고 인식 공유마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공동성명 준비에 어려움이 있어 보이는 대목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중국의 제재를 유발할 수 있는 빌미를 우리 측이 제공한 데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인 10월 29일에 그의 X 계정을 통해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의 조건부 승인을 알렸다. 우리 정부는 고무됐다. 핵원료 확보의 물꼬를 열었을 뿐 아니라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즉 핵폐기물 재처리 문제를 논의할 기회가 보장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런데 이튿날 중국 외교부가 찬물을 끼얹었다. 비확산 조약에 대한 의무를 한미 양국이 다할 것을 주문했다. 중국의 경고성 발언은 시작에 불과하다. 세 가지 우려 때문이다. 첫째, 한국의 핵잠 보유가 주변국에 미칠 영향이다. 일본과 대만마저 이를 보유하려는 연쇄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핵 도미노 효과를 우려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의 핵잠 보유는 미국 해군 체계로의 완전한 편입을 의미한다. 셋째, 일본마저 보유하면 중국이 우려하는 한미일 군사관계 일체화의 가속화다. 사드 '3불'의 마지막 조항에서 이런 중국의 우려는 이미 포함되었고, 유효하다.

이런 이유로 사드 제재, 즉 '한한령'이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우리는 이를 해묵은 사안으로 여기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코를 꿰는 절묘한 신의 한 수이고, 핵잠으로 그 코는 두 개로 증가할 여지가 있다. 우리가 핵잠 건조 승인을 문서로 남기지 않고 트럼프의 SNS로 이를 확약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자충수를 둔 셈이다.

미국은 핵잠 건조에 성공한 이후 영국을 제외한 그 어떠한 나라와도 이를 공동 건조하거나 위탁 건조한 역사가 없다. 최근 미국이 호주와 합의한 것도 핵잠 판매다. 미국의 조선업이 부실한 가운데 우리와의 협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호주 판매용 핵잠도 미국 스스로 건조하기엔 역부족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의 전략적 수순은 역으로 갔어야 한다. 원자력협정 협상 재개와 더불어 핵폐기물 재처리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고, 핵원료 공급을 확보한 후 핵잠으로 넘어갔어야 한다.
하루빨리 핵잠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중국의 추가적인 제재도 피하고 핵잠을 실제로 확보할 수 있는 역설적 일거양득이 가능하겠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