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기고] 과거에 묶인 韓,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04 18:14

수정 2025.11.04 20:54

이광수 독립리서치 광수네복덕방 대표
이광수 독립리서치 광수네복덕방 대표


2006년 미국 경제학자 울리케 말멘디어와 스테판 나겔은 50년간 미국 내 투자 데이터를 분석해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개별 투자자의 선택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에 좌우된다." 물가가 급등하던 시기에 성인이 된 사람은 채권 투자를 꺼렸고, 주식 호황기에 사회를 경험한 세대는 노후에도 주식 비중을 높게 유지했다. 사람들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처음 겪은 경제 환경'에 평생 영향을 받는다.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한국 가계 자산의 75%는 부동산이다.

65세 이상 고령가구는 그 비중이 80%를 넘는다. 단순한 취향이 아니다. 그들이 체험한 시대가 반영된 결과다. 지금 70세 세대가 30대였던 시기는 1985~1995년이었다. 그 기간 동안 3저(저유가·저달러·저금리) 호황, 올림픽 특수, 유동성 확대가 겹치며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아이를 낳는 시기에 부동산 가격 상승을 눈으로 확인했고, 경험했고, 부동산을 통해 자산을 형성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집은 '거주 공간'이 아니라 '인생을 바꿔준 자산'이었다.

경험은 반복되며 신념이 되고, 신념은 교육이 됐다. "집은 무조건 오른다" "강남은 불패다" "사는 순간 돈 버는 거다" "부동산은 지금이 가장 싸다" 구전은 오래 반복되며 신화가 됐다.

문제는 그 신화를 그대로 이어받는 지금의 30~40대다. 최근 서울·수도권 아파트 매수 비중이 가장 높은 연령대가 바로 30~40대다. 실거주보다 투자 목적으로 사는 비중이 높고, '영끌'과 '빚투'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됐다. 부모 세대는 자신들이 부동산으로 자산을 불렸으니 자녀 세대도 같은 길을 가야 한다고 믿는다. 경험을 이어받은 30~40대는 부동산에 몰두하고 있다.

사람들은 과거 경험을 기준으로 행동하고 투자하지만, 세상은 늘 새롭게 변한다. 그래서 질문이 필요하다. "경험은 반드시 미래가 되는가?"

1980년대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였다. 출산율은 2명을 넘었다. 2025년 예상 성장률은 1%대, 출산율은 0.7명 수준이다. 성장은 둔화되고, 인구는 줄고, 고령화는 가속되고 있다. 주택 수요의 기반이 근본적으로 약해지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부동산은 반드시 오른다'는 믿음은 데이터가 아니라 기억에 가깝다. 과거 시점에 사실이었다고 미래를 보장하는 법칙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말한다. "집은 사두면 무조건 오른다" "언젠가 또 폭등한다" "영끌은 리스크가 아니라 기회다" 기억이 논리를 이기고, 경험이 판단을 대신하고 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집값이 오를까?가 아니라 나는 왜 집만 바라보는가? 부동산 말고, 미래를 키울 자산은 무엇인가?

부동산은 한 세대에게 생존 전략이었지만, 다음 세대에게는 가능성을 묶는 족쇄가 될 수 있다. 집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을 위한 수단이다. 그 순서를 되돌려놓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부동산으로 성장한 나라가 아니라 부동산에 갇힌 나라가 될 것이다.

경험은 강력하다. 그러나 미래는 경험의 재방송이 아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과거 습관을 답안지로 삼는 순간, 익숙함이 곧 위험이 될 것이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거를 답으로 삼을 것인가? 미래를 위해 질문을 다시 쓸 것인가? 이제는 질문을 바꿀 때다.
부동산이 아니라 미래를 키울 자산을 묻는 세대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기억과 경험이 아니라 가능성을 기준으로 투자해야 한다.
경험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새로운 질문이 필요한 이유다.

이광수 독립리서치 광수네복덕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