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재정 ‘마중물’ 제대로 쓰여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05 18:12

수정 2025.11.05 18:42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이제 경주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도 끝났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 관세를 둘러싼 투자협정 갈등도 일단락이 되었다. 국내적으로는 10월 한달 동안 전방위적인 국정감사를 통해 국정 전반의 현안을 점검하는 과정도 마무리되어 이제부터는 새 정부가 설계한 내년 그리고 향후 5년간 나라살림 계획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예산은 기본적으로 공약가계부이면서, 구체적으로는 정부 정책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므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내년 예산은 세금이 핵심인 총수입 674조2000억원, 복지·교육·국방 등 총지출 728조원, 정부가 관리하는 재정수지는 109조원 적자로 국내총생산(GDP)의 4%, 국가채무는 GDP의 51.6% 수준인 1415조2000억원으로 편성되었다. 올해보다는 조금 나아질 경제전망이지만 여전히 미국의 관세정책, 중국과의 수출경쟁 심화 등 하방요인이 크고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상존해 총지출을 전년 대비 8.1% 증가시켜 확장재정을 운용할 계획이다.

내년 한 해만이 아니고 정부는 중기계획인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오는 2029년까지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의 4%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설계하고 있어 국가채무가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방향을 설정한 데는 경기회복과 성장잠재력의 확보, 그리고 국민경제 구조개혁을 위해 재정으로 마중물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정책의지가 있었다. 초혁신 아이템, 따뜻한 공동체 구축 등에 집중투자하고 낭비적이고 관행적인 지출을 과감히 구조조정해 성과 중심으로 재정을 운용하면, 이러한 적극재정이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재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300여개의 사업을 폐지하는 등 사업 전반의 재구조화, 연례적 행사성 경비의 구조조정, 교육세 배분, 구직급여 등 의무적 지출제도 개선 등을 통해 역대 최대 수준인 27조원 규모의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부의 기대가 도도한 재정 팽창의 관성을 넘어설 수 있느냐에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을 통해 거점국립대에 지원을 대폭 늘리면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궤를 같이한다. 연구개발(R&D) 부문 예산이 19.3%나 늘었는 바, 명분은 성과지향으로 출연연구기관을 개편하겠다고 하지만 실제 지난 30년간 유지되어 온 연구과제중심 운영제도(PBS)를 폐지하여 출연금을 대폭 늘린 데 기인한다. 외부과제 수주를 통해 경쟁과 효율을 제고하려던 취지가 정작 중요한 연구를 소홀히 하는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 제도를 도입했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보완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결국 예산은 정치 과정의 산물이며, 당연히 집권여당의 공약을 반영해 국정과제가 만들어지므로 이에 따라 예산의 얼개를 짜고 재정을 운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부담, 특히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부채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중물도 지속적으로 붓게 되면 낭비가 될 수밖에 없다.
스웨덴, 스위스, 독일 등 재정이 건전한 나라들을 벤치마킹해 우리도 중장기 재정운용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강제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