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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보이스피싱 정부 대책 정교해야

박소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05 18:13

수정 2025.11.05 18:41

박소현 금융부 차장
박소현 금융부 차장
최근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을 출금하기 전 보이스피싱 주의 절차가 하나 더 늘어났다. △검찰·경찰·금융감독원이나 모르는 사람이 전화로 출금이나 이체를 요청했는지 △비상장주식·해외주식·코인 투자 고수익 현황을 보여주고 이체를 요구하면 100% 사기임을 이해했는지 △전화나 텔레그램으로 대환대출을 요청받고 이체하고 있는지 '예 혹은 아니오'로 ATM 기기 화면에 체크 표시를 하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올해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되고, 최근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준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협박·감금·폭행으로 청년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보이스피싱 사태가 심각해지자 지난 9월 정부가 내놓은 '보이스피싱 범부처 대책'의 일환으로 은행이 ATM 출금 절차를 더 복잡하게 만든 것이다.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한 금융불편 사례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커질수록 같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스피싱 수법이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수준까지 지능화되자 이번에는 은행권에 무과실 배상책임을 물리는 입법을 정부가 올해 내로 추진 중이다.

은행에 과실은 없지만, 그래도 보이스피싱 피해액의 일정 부분을 보상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법상 '과실책임주의' 원칙과 충돌할 수 있으니 배상 요건, 한도를 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를테면 은행이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통해 고객에게 보이스피싱 가능성을 경고하면 보상을 하지 않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데, 결국 고객 돈을 보관하는 은행·금융사가 보이스피싱을 최선을 다해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론'이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제서야 24시간·365일 가동되는 정부 합동대응단을 구축한 정부는 책임이 없는지 묻고 싶다. 또 기업에 법적 책임을 묻는 방안을 내놓기 전에 금융사별로 FDS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예산·인력적 한계는 없는지, 지원책은 없는지 함께 파악하고 논의하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다.

시중은행을 제외한 수익이 줄고 연체율이 급등 중인 지방은행과 카드사는 정보보호 예산조차 해마다 들쭉날쭉이다.
인력은 시중은행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타깃은 10대 청소년도 가리지 않는데, 이들에 대한 대응책은 고민한 흔적도 없다.
정부 대책은 빠르게 내놓는 것보다 촘촘하고 정교해야 한다.

gogosing@fnnews.com 박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