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렌터카로 11박' 일주..트빌리시부터 바투미까지 (4화)
구다우리 전망대서 패러글라이딩, 므츠헤타 즈바리 수도원까지
구다우리 전망대서 패러글라이딩, 므츠헤타 즈바리 수도원까지
[파이낸셜뉴스] 전날의 주타 트레킹은 조지아 11박 일정 중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았다. 숙소였던 제타캠핑의 조식은 비싼 숙박비에도 불구, 수천미터 고지대인 만큼 단출했다. 소시지와 치즈, 파운드 케이크로 간단히 해결했다. 이날은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렸다. 주타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말똥을 피해 언덕을 내려가다가 우비를 쓰고 올라오고 있는 50대 한국인 남성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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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다우리 전망대와 생에 첫 패러글라이딩
구다우리는 조지아 카즈베기 산맥의 해발 2200m에 위치한 스키 마을이다. 우리는 8월에 방문했기 때문에 스키를 탈 일은 없었지만 조지아에서 가장 크고 높은 스키장이 있다고 한다. 주타에서 약 2시간 가량 차량으로 이동했다. 조지아는 고속도로와 일반도로 모두 통행료가 없다. 차량 여행자가 많지 않은 탓인지 같은 목적지를 입력해도 구글맵 상에서 시간이 2시간, 4시간으로 서로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구다우리의 첫 목적지는 해발 2380m에 있는 '파노라마 구다우리' 전망대였다. 전망대는 1983년 조지아와 러시아의 우정을 기념하는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1783년 체결된 게오르게프스크 조약(러시아의 조지아 병합 계기가 되는 조약)의 2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설립됐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카즈베기 산맥과 아르게티 협곡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커다란 원형 벽돌 형태의 조형물에 내부에서 모자이크 벽화를 배경으로 여러장의 사진을 남겼다.
전망대를 둘러보고 전망대 바로 인근에 있는 언덕으로 차를 몰아 이동했다. 수백 마리의 양때가 풀을 뜯고 있었다. 패러글라이딩은 이제 막 영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가격을 듣고는 조지아 물가를 고려했을 때 싸지는 않았지만 평생의 한 번이라고 생각하니 못할 것도 없었다.
한 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서도 조지아 패러글라이딩을 다뤘던 장면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비용을 지불하고 간단하게 설명을 들은 뒤에 전문가의 품에 안겨 활공을 준비했다. 언덕이었기 때문에 발을 서너번 구르자 바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나무판 형태의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 조지아의 푸른 숲과 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행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체감상 30분 가량을 비행했던 것 같다. 8월의 한 여름 이었지만 고지대 특성상 서늘한 바람이 몸을 감쌌고, 비행 내내 셀카봉으로 풍경을 찍었다. 동영상은 이메일을 통해 전달 받기로 했는데 아직 받아보진 못했다.
비행을 마치고 자갈이 깔린 강 변에 착륙을 했다. 나 말고도 여러 명의 관광객이 비행을 마치고 대기하는 장소인듯 했다. 비행을 함께 했던 조지아 친구들은 담배를 한대 피고 능숙하게 낙하산을 정리해 가방에 담았다. 3명의 관광객과 패러글라이딩 전문가, 그들의 일행이 함께 탄 차로 처음 비행을 했던 곳으로 돌아갔다. 원래 자리로 가는 시간도 차로 약 30분 이상은 소요됐던 것 같다. 같이 낙하를 한 미국 로스쿨에 다니는 미국 여자애와, 독일인 아저씨와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독일인 아저씨는 조지아가 유럽 연합의 일원 국가라고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조지아는 서아시아 국가다. 물론 조지아가 한때 유럽 연합에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무산됐고, 러시아에 대한 반감도 큰 것은 사실이다. 패러글라이딩 비용은 350라리, 한국돈으로 18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20만원이라도 반드시 했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괜찮았다.
아나누리 요새 단지와 진발리 호수
파노라마 전망대 다음으로 아나누리 요새 단지로 차를 몰았다. 가는 길에 우연히 꿀을 파는 가계를 발견했다. '허니 하우스'란 곳으로 약 6~87종의 천연 꿀을 팔고 있었다. 여러가지 종류의 꽃 나무에서 생산된 꿀을 팔고 있었는데 전형적인 꿀과 함께 우윳빛이 나는 꿀 등도 있었다. 한국에 가져가기 위해 꿀벌 통의 밀랍이 병에 들어있는 제품을 몇개 샀다. 이후에 알게됐지만 다른 도시에서는 비슷한 제품을 훨씬 더 싼 가격에 팔고 있었다. 꿀, 자석, 머그컵, 와인 등 조지아 대부분 도시에서 살 수 있으므로 첫눈에 반해 바로 구매하기 보다는, 기념품은 나중에 사는걸 추천한다. 짐도 줄고, 분명 더 저렴한 가격에 파는 곳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나누리 요새 단지는 중세 시기 아라그비 공작령의 거점 성으로 13세기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여러 차례 전투와 파괴를 겪은 유서 깊은 요새다. 돌로 쌓은 요새 벽과 탑, 내부의 고대 교회들을 관람할 수 있다. 성벽을 타고 성 이곳 저곳을 둘러 보거나, 성 내부에 난 계단을 통해 위로도 올라갈 수 있다. 특히 성 내부에서 돌로 난 창을 통해 또 다른 성의 첨탑을 볼 수 있는데 해당 포인트에서 찍은 사진은 그림처럼 멋있어서 현재 기자의 카카오톡 배경 화면이기도 하다. 성 내부에는 다양한 그리스 정교회의 그림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조지아에 있는 동안 적어도 10여곳 이상의 교회를 둘러봤는데 모두 규모나, 유물, 완성도가 어마어마 했지만 종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처음만 놀랐을 뿐 이후에는 갈수록 무덤덤해졌다. 성을 둘러보다 꿀벌의 침에 쏘였는데 약간 따끔했다.
요새 뒤로는 진발리 호수가 있는데 시간이 있다면 저수지 벤치에 앉아서 간식을 먹거나 맥주를 한 잔 들여켜도 좋을 듯 싶었다. 진발리 호수를 배경으로 말을 타고 가는 사람도 볼 수 있었는데 카메라 셔터를 누리고 바로 엽서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멋진 사진이 나왔다. 진발리 호수는 '조지아 최고의 청록색 호수'로 알려져 있다. 이날 점심을 못 먹어서 호수 근처의 푸드트럭에서 바게트 샌드위치를 사서 일행과 먹었는데 서비스로 작은 사과 2개를 받았다. 조지아 아저씨들은 어쩐지 조금 무뚝뚝하고 츤데레 느낌이 강했는데 푸드트럭의 여성은 친절했다.
므츠헤타의 즈바리 수도원, 스베티츠호밸리 대성당
다시 차량으로 1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므츠헤타로 이동했다. 므츠헤타는 수도인 트빌리시 북서쪽 20km에 있으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첫번째 목적지는 즈바리 수도원(성당)이었다.
즈바리 수도원은 6세기에 건립, 쿠라강 건너 산 정상에 위치한다. '즈바리'는 조지아어로 '십자가'를 뜻한다. 기독교 성인 니노가 이 산위에 십자가를 세운 뒤 기독교가 조지아의 국교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즈바리 성에 올라 므츠헤타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보는 것이 장관이었다. 즈바리 성당을 지키는 흰바탕에 갈색 귀를 가진 개 한마리가 관광객들 사이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즈바리 수도원 다음으로는 이날 묵을 숙소 근처에 있는 스베티츠호밸리 대성당을 찾았다. 조지아어로 '스베티츠호밸리'는 '생명을 주는 기둥'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옷이 이 성당에 묻혔고, 그 자리에서 거목이 자라나 성당의 기둥이 됐다고 한다. 상당히 큰 규모의 성당으로 성당 내부에서는 엄청나게 거대한 예수의 벽화를 볼 수 있다. 불경스러운 말일지 모르겠으나 눈이 부리부리하고 퀭한 예수가 약지와 엄지로 원을 만들고 근엄하게 내려다 보는 구도다. 성당의 부지 자체도 넓고 볼거리도 많았다. 또 성당 주변으로 마을 상점가가 있는데 둘러볼 곳도 많고 기념품을 사기에도 좋았다.
한 와인샵에 들렸는데 주인장 아주머니가 '크반치카라' 레드와인을 강력 추천했다. '스탈린이 가장 사랑했던 와인'이었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와인 샾에서 시음하니 레드와인임에도 달콤하고 맛있었다. 60라리(3만3000원) 정도였는데 가격이 절반(35라리) 정도인 킨즈마라우리 와인을 샀다. 테이스팅을 해보니 맛은 비슷한데 가격이 더 저렴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비교해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득템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 들린 다른 도시의 마트에서 '크반치카라' 와인을 40라리에 팔고 있는 걸 봤다.
와인을 사고 성당 근처 거리 상점에서 100% 석류 착즙 주스를 마셨다. 25라리(1만3000원)로 현지 물가를 생각하면 굉장히 비쌌지만 아저씨는 아이 머리만한 석류 3~4개를 즉석에서 짜주셨다.
저녁은 '올드 테번(old tavern)'이란 식당에서 먹었는데 조지아는 물론이고 30년 인생 역대 최악의 식당 중 1곳이었다. 매우 배가 고파서 나름 심사숙고해 들어갔는데 주문을 한 뒤 구글 리뷰를 보니 매우 점수가 낮아 약간 불안했다. 크림소스에 마늘을 넣은 닭요리인 '슈크메룰리'와 크림소스 버섯파스타를 주문했는데 두 음식 모두 최악이었다. 닭 요리는 누군가 먹다 남긴 상한 닭을 쓴 것 같았고, 파스타는 이틀 전에 만들어둔 것처럼 면이 완전히 불어 있었다. 그나마 코카콜라가 그곳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조지아 여행 리뷰를 보면 조지아 최고의 음식으로 슈크메룰리를 꼽는 사람이 많았지만 우리는 이날 이후 '슈크메룰리'는 다시 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음식 탓인지 다음날 하루 정도 배탈이 나서 설사를 몇 번이나 했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먹을 생수를 사기 위해 동네 슈퍼에 들렸는데 가는 길에 생맥주를 페트 병에 담아 가져가는 조지아 현지인을 볼 수 있었다. 숙소는 '호텔 8 룸스'란 곳이었는데 전날 사둔 조지아 과자와 마트에서 산 텔리아니 밸리 로제 와인을 조금 마시고 잠에 들었다. 긴 하루였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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