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예전에 위관급 장교 시절에는 제복에 대한 뿌듯함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도. 그러나 지금은 그런 감정은 사치인 것 같습니다. 이제 군을 떠나려고 합니다. 충성심만 강요하는 것으로 군인들을 잡아둘 수 없습니다.” 전역을 신청한 영관급 장교의 하소연이다.
지금 대한민국 군대가 위태롭다.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 붕괴 때문이다. 군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총성이 울리지 않아도, 국방은 지금 전시 상황에 준하는 내부 위기에 처해 있다.
최근 공군 조종사의 경우 한 기수 60명 중 민간항공사로 이직하거나 전역하는 인원을 제외하면, 실제로 전투기를 모는 인원은 15명 남짓에 불과하다. 첨단 전투기가 있어도 조종할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전력(戰力)이 아니다. “군인이라는 자부심이 사라졌다. 그럼 더는 남을 이유가 없다.” 떠나는 조종사들의 말이다. 문제는 공군만이 아니다.
군대는 위로는 장군이, 아래로는 병사가 있지만, 실질적인 전투력을 지탱하는 건 부사관과 초급 장교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하나둘 군을 떠나고 있다.
부사관 학군단(RNTC)은 전문대생을 선발해 핵심 간부로 양성하는 제도다. 하지만 최근 2년 연속 모든 군종에서 지원자 미달을 기록했다. 육군은 2020년 2.5대 1이던 경쟁률이, 2024년엔 0.85대 1까지 떨어졌고 해군은 0.38대 1, 공군은 0.73대 1에 그쳤다.
부사관이라는 직업에 청년들이 관심조차 갖지 않는 상황이다. 한 부사관의 말은 씁쓸하다. “차라리 18개월 병사 복무하고 빨리 사회로 나가는 게 낫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붕괴다.
현장 상황은 더 심각하다. 기갑, 포병, 보병 부사관의 임용률은 절반 이하이고,일부 부대는 훈련조차 “사람을 빌려서” 겨우 진행 중이다.
K2 전차, K9 자주포 같은 첨단 무기들이 있지만, 이를 운용할 인력이 부족해 전차 10대 중 3대는 세워만 둔 상태다. 우리가 자랑하는 K-방산의 위력이 정작 사람이 없어 무력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휘 체계도 흔들리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81기에서는 약 33%가 자발적으로 임관을 포기했다. 공사, 해사, ROTC, 3사 모두 임관율이 하락 중이다. 왜 군에 남지 않느냐고 묻자, 이들은 말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군은 점점 지휘 잃은 집단이 되어가고 있다. 간부 지원자 급감의 원인은 단순한 병영 환경이 아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문제다. 표를 얻기 위한 경쟁 속에서 병사 월급은 급격히 오르고, 복무 기간은 단축되며, 병영 복지는 대폭 확대됐다.
병사에게 더 나은 대우를 제공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간부들의 책임과 희생은 그대로인데, 보상은 병사보다 못한 기형적 구조가 생겼다는 것이다. 병사 급여는 150만 원 수준까지 올랐지만, 부사관 초봉은 200만 원 남짓이다.
책임은 간부가 지고, 혜택은 병사가 받는 상황. 이런 군대에 남을 이유가 있을까? 간부들은 임관 3년 차부터 장기복무 심사를 받아야 하며, 통과하지 못하면 7년 내 전역해야 한다. 게다가 전역 후, 군 경력은 민간에서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장기간 군에 몸담는 것이 오히려 커리어에 독이 되는 구조다.
지속 가능한 미래가 없는데, 누가 군을 직업으로 선택하겠는가. 간부 부족을 군무원으로 메우려 했지만, 이마저도 한계다. 군무원 퇴직자는 2021년 741명에서 2023년 1,448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2024년에도 1,348명이 퇴직했다. 퇴직자의 87~89%는 5년 미만 근무자다. 군무원도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군은 사람을 잃고 있다.
특히 10~20년 차 중견 간부의 이탈은 단순한 숫자 감소가 아니다. 이들은 실전 노하우, 장비 운용 능력, 조직 리더십을 갖춘 국방 자산이다.
예를 들어 공군에서는 조종사, 정비사, 관제사 같은 핵심 인력이 빠르게 줄고 있다. 이들의 자리를 메우는 데는 수년에서 십수 년이 걸린다. 전력은 장비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이 없으면, 안보는 없다.
베트남전 이후 미국도 같은 위기를 겪었다. 미군은 부사관을 군의 등뼈(Backbone)로 삼고 처우와 훈련을 강화했다.
그 결과, 걸프전에서는 단 100시간 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장군에 대한 예우도 문제다. 장군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적 현상도 젊은 장교들이 군을 떠나는 이유중 하나다. 간부들의 미래이며 목표이기도 한 장군이라는 계급이 별볼일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면 그들의 미래도 희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각 계급과 신분에 맞는 대우와 존중만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의견이 군 내부의 의견이기도 하다.
2040년, 우리 군은 27만 명 규모로 줄어들 예정이다. 북한군의 4분의 1 수준이다. 그때 가서 장비를 늘려 봐야 아무 의미 없다. 국방은 선제적 대응만이 답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부사관·초급 장교의 보상 체계 정상화, 안정적인 장기복무 환경 조성, 전역 이후의 경력 활용 체계 마련. 군무원 신분과 복지 개선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건 특혜가 아니다. 국가 안보를 위한 최소 조건이다.
지금 대한민국 군은, 안에서부터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그 무너짐은, 우리가 눈치채기 전에 전력을 잃게 만들 것이다. 정치가 안보를 표 계산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그 대가는 전 국민이 지게 된다. 총 한 발 쏘지 않고도 패배할 수 있다는 이 경고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 육군발전자문위원, 공군발전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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