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미 기업과 소비자들 간에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분기 실적 발표로 볼 때 기업들은 트럼프 관세를 우회하는 방법을 찾은 것으로 보이지만, 소비자들은 관세 직격탄을 맞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증시 상승세에 따른 ‘부의 효과’ 덕분에 주식을 소유한 부유층의 소비는 타격이 없어 소비 전체의 흐름은 아직 양호한 것으로 조사됐다.
3분기 순익 성장률, 4년 만에 최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현지시간) 미 기업들의 분기 실적이 4년 만에 최고 성장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미 상장주 전체를 아우르는 러셀3000지수 편입 3000개 기업들의 전년 동기 대비 순익 성장률 중간값은 3분기 들어 11%를 기록했다.
팩트세트에 따르면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은 4분기에도 기업들의 순익 성장률이 7.5%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증시가 인공지능(AI) 관련주를 중심으로 한 일부 종목에만 상승세가 편중됐다는 지적이 무색하게 순익 성장세는 온기가 비교적 골고루 퍼진 것으로 확인됐다.
도이체방크 분석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를 구성하는 11개 업종 가운데 6개 업종의 3분기 평균 순익 증가율이 플러스(+)를 기록했다. 2분기에는 금융과 기술 업종 등 단 2개 업종에 불과했다.
기업들, 관세 충격 우회로 찾아
연초 트럼프의 광범위한 관세로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하던 각 기업 경영진이 관세 충격을 회피하는 방법을 찾으면서 실적이 크게 좋아진 것으로 보인다.
운용자산 규모 3000억달러의 SLC 매니지먼트 상무 덱 멀라키는 “기업들이 관세 충격을 흡수하는 방법을 찾았다”면서 “소비자들도 일자리가 있는 한 지출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깜짝 실적 빈도, 25년 집계 사상 최고
골드만삭스 주식전략가 데이비드 코스틴은 지금까지 3분기 실적을 공개한 S&P500 기업들 대부분이 시장 전망을 웃도는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면서 이는 팬데믹 기간을 빼면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코스틴은 분석노트에서 “지난 25년 데이터 집계 사상 이처럼 깜짝 순익 발표 빈도가 높았던 것은 2020~2021년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곤 없었다”고 말했다.
소비재 업체들은 고전
그렇지만 소비자들을 직접 상대하는 소비재 업체들은 트럼프 관세 충격을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관세 충격으로 인해 소비자 가격을 올리면서 실적이 타격을 입고 있다.
하인즈 케첩으로 유명한 크래프트 하인즈 최고경영자(CEO)는 연중 최대 대목인 크리스마스로 접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 심리가 수십 년 만에 최악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 레스토랑 체인 맥도널드는 소비자들이 좀 더 비싼 메뉴는 외면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도이체방크는 관세 충격이 없는 서비스 판매 업체들이 이런 재화 판매 업체들에 비해 3분기 순익이 더 나았다고 지적했다.
소비 심리 악화
미 노동 시장은 아직 양호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폴로 글로벌 매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토스텐 슬록은 미 연방정부 셧다운(일시 업무 중단)으로 인해 공식 통계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여러 민간, 연준 등의 데이터로 볼 때 노동시장은 아직 양호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마존, UPS, 타깃 등이 대규모 감원에 나서고, 인플레이션(물가상승)도 고공행진을 지속하는 가운데 소비심리는 하강하고 있다.
미시간대 소비심리 지수는 이달 들어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 지수 집계 책임자인 조앤 슈는 소비 심리 하강이 “인구, 연령, 소득,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광범위했다”고 말했다.
주식 보유에 따른 소비 양극화
다만 슈는 단 하나 예외가 있었다면서 바로 주식 보유에 따른 차이였다고 지적했다.
슈는 주식 보유 규모가 큰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소비심리 지수가 11% 상승했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 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리사 섈럿은 노동시장 약세에도 불구하고 소비 수요가 여전히 탄탄한 것으로 보이는 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섈럿은 가진 자들과 못 가진 자들 간 ‘격차(캐즘) 확대’ 속에 가진 자들의 소비가 탄탄해 소비가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득 상위 40% 가계가 “미 전체 부의 85% 가까이를 통제한다”면서 “이 부의 3분의2는 증시와 직접 연결되며 이 증시는 지난 3년 90% 넘게 상승했다”고 말했다.
섈럿은 결론적으로 “노동 시장 전망은 점점 중요도가 낮아지는 반면 증시 향배 전망이 소비 수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비는 미 국내총생산(GDP)의 약 70%를 차지하는 핵심 항목이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