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굴뚝 식고 사람 떠나도 ‘시장 자율’ 뒤 손놓은 정부[한국판 러스트벨트를 가다]

박신영 기자,

이동혁 기자,

정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09 18:29

수정 2025.11.09 18:56

한국판 러스트벨트 현실로
작년 제조업체 수 전년比 6.1%↓
포철·현대제철 공장 잇따라 폐쇄
현장선 "정부 마중물만 붓고 떠나"
굴뚝 식고 사람 떠나도 ‘시장 자율’ 뒤 손놓은 정부[한국판 러스트벨트를 가다]

"요즘 한달에 일하는 날이 14일도 안된다. 트럭이 서 있는 날이 더 많다."(포항제철소 인근 물류업계 관계자)

"매출이 20~30% 줄었다. 점심시간에도 손님이 없다." (여수 석유화학단지 상인들)

"GM대우가 떠난 뒤 군산은 죽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인근 도시로 다 빠져나갔다." (군산 지역주민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던 주력인 제조업의 엔진이 꺼져가고 있다.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부품 등 전통 제조업의 부진이 심화되는 가운데 정부는 '자율적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산업 현장에서는 "정부가 마중물만 붓고 떠난 격"이라며 "더 강력한 리더십으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 대전환기를 맞아 더이상 '자율' 뒤에 숨지 말고 산업 구조조정을 능동적으로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몇년 버티면 좋아지는 경기순환주기에 따른 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9일 국가데이터처의 '2024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사업체 수는 1.7% 증가했지만 제조업체 수는 오히려 전년 대비 6.1%(3만2852개) 줄었다. 제조업 종사자 수도 414만6000명으로 1만명 감소했다. 산업구조의 축소가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특히 '철강의 도시' 포항과 '석유화학의 도시' 여수의 상처가 깊다. 산업 의존도가 높은 두 지역은 제조업 위기의 충격을 가장 먼저, 그리고 깊게 체감하고 있다. 포항은 30년 가까이 인구 50만명을 유지해 왔으나 2022년 50만명선이 무너진 후 3년 만인 2025년 48만명대로 떨어졌다. 여수 역시 2021년 28만명선이 무너졌고, 2024년에는 26만명대로 주저앉았다.

현장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현대제철은 2공장을,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1제강공장과 1선재공장을 폐쇄했다. 제조업의 냉각이 지역상권 전반으로 번지며 도시 전체가 식어가는 모습이다. 한국판 러스트벨트의 전조는 이미 군산에서 확인됐다. 지난 2018년 한국GM이 공장을 철수한 후 7년이 지났지만 여파는 여전하다. 협력업체 폐업이 잇따르며 지역상권이 무너졌고, 인구는 꾸준히 줄고 있다. 2017년 4조778억원이던 군산 제조업의 부가가치 생산액은 2023년 3조9522억원으로 3.1% 감소했다.

이 같은 현상은 단지 일부 지방 산업도시의 위기로 그치지 않는다. 철강·석유화학·자동차부품 등 기초산업이 흔들리면 전방산업 전체의 경쟁력도 약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여전히 '시장 자율' 기조만 고집한다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지금은 산업구조가 완전히 바뀌고 있는 상황"이라며 "또다시 정부가 개입해서 산업정책을 써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은 미국, 중국, 일본조차도 전부 정부가 개입해서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는 만큼 우리도 과거에 갖고 있던 정부 개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예전 산업위기는 경기순환주기에 따른 위기였기 때문에 몇년 버티면 좋아졌다"며 "지금은 시간이 흘러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모두 갖고 있는데 정부는 기존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예전 위기 때처럼 기업 자율구조조정을 외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정 위원은 이어 "'건설경기가 좋아지면 괜찮겠지' '중국 경기가 회복되면 나아지겠지' 하는 과거의 관성을 버리고 산업위기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전략을 잘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adet80@fnnews.com 박신영 이동혁 정원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