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떠난 공장, 색바랜 산단…여전한 군산 제조업의 상흔 [한국판 러스트벨트를 가다]

정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11 15:21

수정 2025.11.11 15:12

(3) HD현대중공업, 한국GM 공장 폐쇄 후 쇠락하는 군산
인구 감소 지속...제조업 생태계 붕괴로 부가가치 회복 요원
미래차 전환, 생산거점 이전 가속에...자생 어려운 부품업계 비상


5일 군산 명신 공장 정문에 한국GM 군산공장 관련 각종 표창들의 칠이 벗겨져 있다. 정원일 기자
5일 군산 명신 공장 정문에 한국GM 군산공장 관련 각종 표창들의 칠이 벗겨져 있다. 정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7년이 지났지만, 군산 주민들의 가슴 한편엔 여전히 깊은 상흔이 남아 있었다. 경기 상황을 물으니, 주민들의 입에선 어김없이 7년 전 문을 닫은 '한국GM 군산공장'이 튀어나왔다. 단순 자동차 공장 하나가 문을 닫은 것을 넘어 여전히 지역 주민들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사라진 분주함...잡초만 무성
5일 한국GM 군산공장이었던 명신 공장 정문이 페쇄돼 있는 모습. 내부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정원일 기자
5일 한국GM 군산공장이었던 명신 공장 정문이 페쇄돼 있는 모습. 내부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정원일 기자

지난 1997년, 군산국가산업단지에 둥지를 틀고 뛰기 시작한 한국GM 군산공장은 20여 년 동안 쉐보레 크루즈와 올란도 등 핵심 모델을 생산하며 전 세계로 수출하던 ‘군산 제조업의 심장’이었다.

그러나 지난 5일 찾은 군산국가산업단지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했다.

평일 오전, 1시간 반 가까이 산업단지를 걸었지만, 마주친 행인은 단 세 명. 발길이 끊긴 인도에는 잡초가 무성해 걷기조차 힘들었고, 곳곳에 흩어진 공구와 폐목 더미에서는 한때 활기를 띠던 제조업 단지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초등학생 때부터 군산에서 살고 있다는 택시기사 문모씨(51)는 "몇년 전만 하더라도 국가산업단지는 활기찬 곳이었지만, 한국GM, HD현대중공업 등 대기업들이 손을 떼며 눈에 띄게 한가해졌다"며 "당시 이곳으로 택시를 부르는 고객들도 많았는데, 수입 감소도 체감될 정도"라고 호소했다.

5일 군산국가산업단지 도보에 잡초와 잡동사니들이 어질러져 있다. 정원일 기자
5일 군산국가산업단지 도보에 잡초와 잡동사니들이 어질러져 있다. 정원일 기자

한국GM 군산공장은 2019년 중견 자동차 부품사 명신이 인수해 전기차 사업 진출을 모색했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혀 지난해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공장의 정문은 폐쇄돼 있었고, 출입이 이뤄지던 동문에서도 몇 대의 차량만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정문에 붙은 칠이 벗겨진 표창들만이 이곳이 옛 한국GM 공장이었다는 것을 조용히 말해줄 뿐이었다. 공장 바로 옆에 위치해 한국GM의 수출기지 역할을 했던 군산항 자동차 전용 부두의 모습도 바뀌었다. 수출 차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한 때 이곳을 가득 채우던 쉐보레 로고는 찾을 수 없었다.

인구 감소, 협력업체 연쇄 충격…"지역 죽어가고 있다"
67년 일평생을 군산에서 살았다는 주민 이모씨(67)는 지난 수년간 군산이 '죽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씨는 "한국GM이 떠나고 군산조선소도 다시 재가동한다지만, 이미 하청업체들은 다른 곳으로 다 빠져나갔다"며 "일하는 사람들도 대학이나 큰 병원이 있는 전주나 익산에서 통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주장은 실제 수치로도 나타난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를 살펴보면, 2017년 27만4997명이었던 군산 인구는 매년 줄어들며 지난달 기준 25만6585명을 기록했다. 8년 새 2만여명이 군산을 떠난 것이다. 2017년 HD현대중공업이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을, 이듬해 한국GM이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한 것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5일 한국GM의 수출기지 역할을 했던 군산항 자동차 전용 부두. GM차량은 찾을 수 없었다. 정원일 기자
5일 한국GM의 수출기지 역할을 했던 군산항 자동차 전용 부두. GM차량은 찾을 수 없었다. 정원일 기자

대기업이 떠나면서 공장 근로자뿐 아니라 자동차 부품 등 연관 협력업체들도 타격을 입었다. 이는 다시 지역 상권의 피해라는 연쇄 충격으로 이어졌다. 군산의 제조업 부가가치 생산액은 여전히 한국GM 철수 이전인 2017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전북도는 폐쇄 당시 한국GM 군산공장에 부품 등을 납품하는 1·2차 중소 협력업체만 135개, 근로자는 1만7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자생력이 높지 않아 완성차의 생산거점이 무너지면 직격타를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의 자동차부품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국내 부품업체 2만1443개사의 68%가 10인 미만 사업체로 추정될 정도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생산거점을 자국에 유치하려는 해외 각국의 움직임, 정부 주도의 급격한 미래차 전환 추진에 소재·부품사들이 휘청일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군산 사례에…부평도 '불안감' 여전
대미 관세, 실적 부진 등을 겪은 한국GM이 올해 부평공장 일부 부지와 직영서비스센터 매각방침을 밝힌 것에 대해 지역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군산의 선례와 무관하지 않다.

회사가 최근 2028년도 이후 생산 계획이 수립돼 있으며 확정시 노조와 공유하겠다고 밝히면서 '철수설'을 잠재웠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3일 부평공장 인근에서 만난 자영업자 A씨는 "일단 뉴스를 보고 한숨을 덜었지만, 향후 수년 내 부평공장이 나가게 되면 장사는 어떡하나"라고 말했다. 오는 2028년은 한국GM이 산업은행이 협의했던 사업유지 기간인데, 이후 군산 사태때와 같은 기습 발표가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지난 3일 한국GM 부평공장 정문에 트럭이 들어가고 있다. 정원일 기자
지난 3일 한국GM 부평공장 정문에 트럭이 들어가고 있다. 정원일 기자

제조업으로 상처 입은 군산 주민들은 다시 제조업에 의한 지역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제한적이지만 군산조선소가 재가동을 시작했고, 새만금 단지를 중심으로 이차전지, 소재 등 첨단 산업 생태계를 꾸리겠다는 것이다.


군산의 한 공인중개사 장모씨(55)는 "최근 새만금 단지에 이차전지 기업들이 많이 들어온다는 소식으로 경기 회복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며 "일단 기업들이 다시 들어오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경기도 좋아지지 않겠나"라고 전했다. one1@fnnews.com 정원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