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교육일반

[기고] 서울교육 10년, 정책보다 신뢰가 우선이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11 18:10

수정 2025.11.11 18:09

김현철 서울교육자치시민회의준비모임 대표
김현철 서울교육자치시민회의준비모임 대표
11월 13일, 50만명의 수험생이 다시 수능을 치른다. 지난 10년을 달려온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서울교육은 어떤 의미였을까?

서울교육은 교실민주주의와 학생인권 등 많은 것을 바꿨지만, 입시 경쟁과 사교육 과열 앞에서는 무력했다. '수능은 권한 밖', '사교육은 시장의 영역'이라며 현실과 타협하는 사이, 사교육은 역대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우리는 '혁신'을 말하며 교육 불평등의 사다리를 더 높게 쌓은 셈이다.

문제는 표면이 아니라 구조다.

교육문제를 교육의 범위로 한정하는 순간 교육개혁은 허공의 메아리가 된다. 아무리 숭고한 교육가치도 사회적 성공을 결정하는 대학과 학벌 앞에서, 승자독식의 사회적 가치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교육과 사회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회개혁 없는 교육개혁이란 공허하고, 교육개혁 없는 사회개혁은 미래가 없다. 교육개혁은 사회개혁의 초석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서울교육은 기존 혁신교육을 뛰어넘어 학생과 학부모들의 삶을 바꾸는 혁신의 혁신이 요구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시간이다. 전 세계가 AI로 미래를 설계하는 사이, 수능은 여전히 '정답찾기'식 평가다. 우리는 AI가 가장 잘할 일을 인간에게 훈련시키며, AI에게 가장 먼저 대체될 인력을 양산하는 역설 속에 있다.

그동안 내신 절대평가, IB 도입, 수능 자격고사화 등 수많은 대안이 논의됐다. 그런데 왜 현장을 바꾸지 못했을까? 첫째, 학부모의 불신이다. '내 아이만 손해 볼 수 있다'는 공포가 핵심이다. 학교가 내신을 부풀릴까, 새 제도가 또 다른 사교육을 부를까 두려워한다. 결국 '그래도 가장 공정한 건 수능'이라는 낡은 믿음으로 되돌아간다.

둘째, 대학의 저항이다. 상위권 대학에게 수능은 가장 강력한 '선발권력'이다. 대학이 이를 포기하지 않는 한, 모든 개혁은 교문 앞에서 좌초된다.

셋째, 정치의 단절이다. 5년 단임 정권은 10년 이상 걸릴 교육개혁을 완수할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뒤집히며 학부모에게 '지금 당장 점수부터 따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 세 축의 불신이 서로를 붙잡는 한, 백 개의 개혁안도 소용없다. 문제의 본질은 '정책의 부재'가 아니라 '신뢰의 부재'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제도가 아니라, 깨지지 않는 신뢰의 체계다.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되는 '서울 교육개혁 10개년 사회협약'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 '서울교육 사회적 합의위원회'가 서야 한다.

학부모·교사·대학·산업계·사교육업계까지 함께 모여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공동으로 결정해야 한다. 교육감 한 사람의 공약이 아닌, 서울시민 전체의 약속이 돼야 한다.

이 협약이 실효를 가지려면 '서울형 공교육 신뢰인증제'가 필요하다. 학교 평가의 공정성이 인증돼야 대학은 학교성적을 믿고, 학부모는 공교육을 믿는다. 수능 개편은 제도의 출발점이 아니라 신뢰의 결과여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은 이 합의가 10년간 흔들리지 않도록 조례와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개혁이 이어지고 학교가 신뢰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진짜 혁신이다.


수능을 앞둔 우리 아이들에게 더 이상 변명 대신 책임으로 응답해야 한다. 서울교육은 이제 정책의 기술이 아니라 신뢰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혁신의 혁신이라는 미래의 문을 여는 첫걸음이다.

김현철 서울교육자치시민회의준비모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