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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대만 좌우할 전략산업… 전자부품·통신기기 경쟁력도 강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12 18:40

수정 2025.11.12 18:40

허재철 대외경제정책硏 연구위원
최대 파운드리기업 TSMC 외에
굵직한 패키징·팹리스업체 보유
韓, 기술 합작투자·R&D 등 통해
상호협력 강화할 기회 늘려가야
허재철 대외경제정책硏 연구위원
허재철 대외경제정책硏 연구위원
최근 대만 경제의 상황과 강점에 대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허재철 연구위원에게 의견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만이 반도체 산업 하나로 이렇게 급성장할 수 있나.

▲지난해 대만 경제의 산업별 구성 비율을 살펴보면, 서비스업이 약 5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공업(제조업)이 약 40%로 두 번째다. 농업은 약 1.5%로 미미하다. 성장 속도는 공업(제조업)이 가장 빨라서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제조업 내에서는 반도체 이외에도 전자부품과 정보통신기기 등의 제조 부문에서도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대만 경제의 강점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제조 경쟁력과 중소·중견 기술기업(SKILL-BASED SMEs) 기반 경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TSMC와 같은 대기업도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 등에 비해 대기업 집중도가 낮고 기술·부품·모듈 단위의 전문기업이 활발한 경제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 속도가 빠르고 글로벌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이 우리보다 발달했나.

▲소재 분야에 있어서 대만은 화학 소재, 반도체용 특수가스 등을 일본과 한국,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실리콘 웨이퍼와 기능성 고분자, 산업섬유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부품 분야에서는 세계 반도체 후공정, 기판, 서버,제조자개발생산(ODM) 공급망의 중심 국가다. 또한 장비 분야에서 대만은 전공정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후공정은 자체 생태계가 강하다.

―TSMC 외에 우리의 삼성, 현대와 같은 재벌은 없나.

▲그런 성격의 대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대기업은 TSMC 이외에도 다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 ASE(日月光)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회사이고, MediaTek(聯發科)는 글로벌 반도체 설계(팹리스) 회사이며, Foxconn(鴻海)은 아이폰 조립 기업으로 세계 제조업 매출 톱10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Quanta, Wistron, Compal, Pegatron와 같은 서버 및 노트북 제조 회사가 있고, Formosa Plastics Group(台塑集團)과 같은 석유화학 대기업, Evergreen(長榮海運)과 같은 글로벌 컨테이너 해운사도 있다.

―대만 여야가 기업 지원만큼은 어떻게 한마음이 되었나.

▲대만 정치는 중국과의 교류·협력이 필요하다는 국민당과 반중국 정서가 강한 민진당의 대결 구도다.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지만, 경제 발전에서는 주요 기업의 역할을 인정한다. 그래서 기업 지원에서는 여야 모두 적극적이라고 본다.

―대만도 국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했다는데.

▲민생 안정과 소비 활성화의 목적으로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1인당 약 46만 원(1만대만달러)의 현금 지급이 진행 중이다. 야당인 국민당이 적극적이었고 여당인 민진당과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었다. 여소야대 구조인 대만의 정치 환경에서 야당의 주장이 관철된 것으로 판단된다. 현금 지급에 대만인 상당수가 지지하지만, 재정 건전성 등과 관련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가가 우리보다 싸고 안정됐나.

▲대만은 식비와 교통비, 월세(지방) 등 기본 생활비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낮고 안정적이다. 인건비와 임차료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고, 소규모 외식 문화 등 생활 서비스 발달로 풍부한 공급에 따른 가격 하락 요인이 있다. 공공요금도 잘 관리된다. 단 수도인 타이베이의 주거비와 생활비는 서울과 큰 차이가 없다.

―대졸 초임이 150만원 정도로 저임금이라는데.

▲기본 생활비가 한국보다 낮기 때문에 인금 인상 요구가 한국보다 약하며,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고임금 신입 일자리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작용하고 있다. 또한 노사 임금 협상 문화가 약하다. 초임은 낮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임금이 빠르게 상승하는 구조다.

―노동운동은 우리보다 온건한가.

▲그렇다. 역사적으로 대만은 1949년부터 1987년 전까지 계엄 상태에 있었는데, 이러한 정치 환경이 노조 활동을 제한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 구조와도 관련이 있는데,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보니 노조 조직률이 떨어지고 대규모 노조 결성도 많지 않다. 따라서 노조 활동이 사회적·정치적 이슈로 확장되는 경우가 적고, 노조와 정당의 연결도 한국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접근보다는 직장·사업장별 이슈에 보다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대만 진보정부의 노동정책은 우리와 다른가.

▲대만에서는 파업 자체가 합법 절차에 기반한 합의된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쟁의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으로 압박하는 문화가 거의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와 같은 '노란봉투법'을 별도로 제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노사관계가 한국처럼 극단적으로 대립적이지 않으며 파업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노란봉투법과 같은 이슈가 부각되지 않는 배경으로 보인다.

―대만도 탈원전 국가였는데.

▲대만은 에너지가 부족한 섬지역으로 전력 공급 안정을 위해 70년대 초에 처음으로 원자력 발전을 시작했다. 1986년에 창당한 민진당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계기로 야당으로서 원전 중시 전력 정책을 비판했다. 민진당은 반핵을 통해 사회적 지지, 정치적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반핵과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 민진당의 양대 이념이다. 대만은 여전히 탈원전 기조를 유지해 나가면서 녹색에너지 생산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만을 다시 이기려면.

▲대만은 반도체 산업을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략 산업(silicon shield)으로 규정하며 강력한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당연히 우리도 적극적인 정부 지원 정책이 필요하고, 민관학이 협력하는 체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대만과 우리는 협력을 해야 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대만과의 무역이 확대되는 가운데, 프로세서와 컨트롤러, 특수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의 수출 결합도가 급등하며 대만 공급망 내 한국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패키징 기술 합작 투자와 교차 라이선스 계약, 차세대 제조의 협력적 R&D 등에서 상호협력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