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반도체 업체 넥스페리아 경영권 분쟁이 전 세계 자동차 생산 차질 우려를 빚고 있다.
중국이 수출 통제를 풀기로 했지만 유럽 자동차와 기타 산업계가 ‘극심한’ 반도체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현지시간)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넥스페리아와 중국 자회사 간 독특한 지배구조가 발단이 된 경영권 다툼이 전 세계 자동차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르면 수주일 안에 전 세계 생산 라인이 멈출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자동차, 반도체 공급 차질 재연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네덜란드 넥스페리아는 양측의 적대적인 대치가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 자회사에 실리콘 웨이퍼를 공급하지 않고 있다.
넥스페리아가 영국, 네덜란드, 독일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만들어 중국 자회사에 보내면 중국에서 반도체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공급망이 붕괴된 것이다.
넥스페리아가 중국 자회사와 함께 만드는 저마진 범용 반도체는 자동차 전자장비는 물론이고 조명, 에어백 시스템부터 잠금 장치, 전동 창문 조작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미국 자동차 업체들, 그리고 한국 현대, 기아차도 넥스페리아 반도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당국이 수출 금지 조처를 해제한 뒤 넥스페리아의 수출이 일부 재개됐다고 말하고 있지만 한 유럽 자동차 간부는 여전히 반도체 공급 차질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경영권 다툼과 중-유럽 갈등의 이면
자동차 반도체 공급 차질은 네덜란드 넥스페리아 본사와 중국 자회사, 그리고 둘 사이에 끼어들어 공급망을 흔들고 있는 넥스페리아 소유주인 중국 ‘윙텍 테크놀로지’ 간 갈등에서 비롯됐다.
갈등의 시작은 네덜란드 정부 조처였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해 10월 윙텍 창업자이자 당시 넥스페리아 최고경영자(CEO)였던 장쉐정에게 “심각한 거버넌스 결함”이 있다면서 장쉐정을 비롯한 중국 측 임원들을 강제로 쫓아냈다.
네덜란드는 냉전 시대인 1952년에 만들어진 ‘물자 조달법’을 사상 최초로 발동해 정부가 임명한 감독관에게 넥스페리아 경영을 맡겼다.
중국 모회사인 윙텍이 넥스페리아를 소유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경영권은 박탈한 것이다.
이는 윙텍이 지난 2019년 넥스페리아를 인수한 뒤 나타난 편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중국 자회사는 본사에 웨이퍼 대금 지불을 거부하고, 본사가 승인하지 않은 은행 계좌를 개설했다. 또 고객과 하청업체, 공급업체 등에 거짓 정보가 담긴 서류를 무단 발송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윙텍이 유럽 기술만을 확보한 뒤 새 은행계좌를 통해 수출 대금을 가로채고, 유럽법인을 배제한 채 독자적으로 회사를 꾸려나가려 한다는 의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겉으로는 중국 소유주와 네덜란드 본사, 중국 자회사 간 갈등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중국과 유럽의 갈등, 기술 탈취 우려 등이 자리잡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 생산 차질 우려 심화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들은 재고가 몇 주 분량만 남았다면서 반도체 공급을 위한 정상 운영을 호소하고 있다.
넥스페리아가 생산하는 이들 범용 반도체는 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마진도 박하지만 사용량이 매우 많고, 공급사가 한정돼 있다는 특징이 있다.
또 자동차 설계도 이 반도체에 맞춰져 있어 단기간에 다른 반도체로 바꿀 수도 없다.
이 때문에 현대차를 비롯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일본 도요타, 독일 폭스바겐 등으로 구성된 미 자동차혁신연맹은 넥스페리아 생산 중단이 전 세계 자동차 생산 전반에 치명적인 차질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편 현대, 기아차는 수개월치 재고를 확보하고 있어 당장은 생산 차질을 걱정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넥스페리아는 네덜란드 가전업체 필립스에서 2017년 독립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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