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생애보고서ㅡ ① 자녀 편]
놓아야 한다는 걸 알지만,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부모들
'독립 못하는 자녀, 빈곤한 노년' 불행의 씨앗 심지 말아야
놓아야 한다는 걸 알지만,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부모들
'독립 못하는 자녀, 빈곤한 노년' 불행의 씨앗 심지 말아야
항상 곁에서 힘이 되는 존재 '가족'. 그러나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X세대는 자녀 교육에 올인하면서 부모 부양까지 놓지 못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본인의 노후는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샌드위치' X세대의 [가족생애보고서]를 자녀편과 부모편으로 나눠 그들의 '끝나지 않는 숙제'를 파헤쳐 본다.
[파이낸셜뉴스] "이 정도는 다들 하니까…" 월급 3분의 1이 자녀 교육비로 나간다.
X세대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자신의 노후를 담보로 잡았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끝까지 도와야 할까, 아니면 지속가능하게 도와야 할까?"
'에듀 푸어'라는 말이 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에 따르면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며 빈곤하게 사는 가구를 말한다. 전문가들은 은퇴하기 전까지 에듀 푸어를 벗어나지 못하면 노후를 준비하지 못해 '실버 푸어'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 월급 600만원 받아 200만원은 학원에
저출산으로 학령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사교육비로 사용되는 총액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학생수가 줄어도 사교육 참여율과 학생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2015년 학생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24만4000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2024년에는 47만4000원으로 10년동안 94% 상승했다. 초등학교의 경우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23만1000원에서 44만2000원으로 증가했고 중학생 사교육비는 27만5000원에서 49만원으로, 고등학생 사교육비는 23만6000원에서 52만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이는 평균일 뿐 매달 수백만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한다는 부모들의 탄식도 들린다.
실제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강모씨(54)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의 교육비로 매달 200만원을 쓰고 있다. 영어학원 50만원, 수학 영재센터 50만원, 개인 과외 100만원 등이다. 월급의 3분의 1을 쓰고 있는 것이다.
"친구 엄마들이랑 얘기하면 우리 애만 뒤처지는 것 같아요. 선행학습을 얼마나 시켜야 할 지 모르겠고, 영어도 원어민 수준으로 만들어야 하고… 안 시키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정도는 다들 하니까…"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지만, 노후를 생각하면 불안하다.
"자리 잡기 전까진 도와줘야죠" 26살 취준생 딸 용돈 100만원
문제는 자녀가 커도 지원을 하고 있고 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기도 분당의 이선희씨(가명·53)의 딸은 26세, 취업 준비 2년째다. 성인이 됐지만 딸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과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50만원을 지원한다. 또 딸이 기죽을까 용돈을 30만원 주고 있다. 핸드폰 요금 등 기타 지원까지 합하면 한달에 100만원 가량이 들어간다.
취업이 끝이 아니다. 취업을 해도 지원은 계속된다.
내년 1월 첫 출근을 앞둔 딸을 앞둔 김정호씨(57)는 주말이면 딸 회사가 위치한 평택 인근을 돌아다니고 있다. 서울에서의 출퇴근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 조그만 아파트라도 하나 구해주기 위해서다. 혼자 살아야 하니 우선 안전해야 하고 편의시설도 있어야 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전세 또는 반전세를 알아보고 있는데 예상 지출규모가 만만치 않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길어진 자녀의 부 의존'
자녀에 대한 '끝없는' 지원은 이들 일부 부모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자녀의 독립 시점이 구조적으로 늦어지면서 자녀에 대한 지원은 확대되고 있다.
국가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022년을 기준으로 배우자가 없는 25~39세 청년의 부모동거 비중은 50.6%에 달했다. 이는 지난 2020년 54.9%, 2021년 51.9%에 비해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청년 두명 중 한명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성별로는 여자가 51.1%로 남자 50.2%보다 조금 높았다.
연령별로 25~29세의 부모 동거 비중이 57.0%에 달했고 30~34세의 경우는 46.3%를 기록했다. 아직 학생일 가능성이 크고 사회생활을 했다고 해도 '초년병'인만큼 이해가 간다.
그러나 미혼 35~39세 가운데 41.8%도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생활비를 부담할 지는 모르겠지만 부모에게서 주거를 제공받고 있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지원을 끊을 수 없는 건 출산율과도 연관이 있다.
X세대의 자녀로 볼 수 있는 1995~2010년 출생아 수는 71만명에서 47만명으로 급감했다. 또 합계출산율은 1.634명에서 1.226명으로 떨어졌다. 최근에는 0.78명까지 하락한 상황이다. X세대 자녀 대부분이 한 자녀 또는 두 자녀 구조이기 때문에 부모의 애정과 투자, 기대가 한 명에게 집중될 수 밖에 없다.
요즘 결혼하기 전 필수 질문 "너네 엄빠, 노후는 준비되셨지?"
문제는 부모가 제대로 노후 준비를 못하면 자녀 결혼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MX세대와 대화를 하면 어느 순간 결혼 상대방 부모의 노후준비도 평가항목 중 하나가 됐다.
최근 만난 29세의 함유선씨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부모님이 어느정도 노후 준비를 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산이 많다면야 괜찮지만 평범한 집에서는 잘 돼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0세의 김기수씨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재산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정도 대비를 했는지를 알아야 양가 부모님께 지원할 수 있는 규모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소득의 10%"..전문가들이 말하는 '자녀지원 안전선'
자녀를 돕는 일이 부모에게 '부담'만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부모는 ‘내가 도울 수 있을 때 도와주는 기쁨’도 느낀다. 다만 그 기쁨과 책임이 내 노후를 파괴하지 않는 선 안에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숫자로 된 기준선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자녀 지원을 끊을 수 없다면 최소한 '한계선'은 지켜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는 "자녀교육비를 소득의 10%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며 "자녀교육비와 노후자금 저축 비율을 가급적 1대1로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월 소득이 500만원이라면 자녀교육비는 월 50만원 이내로, 노후자금 저축도 최소 50만원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에게 월 100만원을 지원한다면 노후를 위해서도 최소 100만원은 저축해야 안전하다.
100세시대연구소는 "에듀푸어(교육비 지출로 빈곤하게 사는 가구)가 되지 않으려면 합리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며 "부부가 함께 1년에 한 번 교육비 예산을 정하고, 사교육비 통장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원 종료'가 아니라 '지원 설계'
전문가들은 X세대에게 다음과 같은 ‘지속가능한 지원 방식’을 제안한다.
① 지원 기한 설정 >>> “월세는 올해까지”, “취업 후 3개월까지 생활비 지원” 같은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무기한 지원은 부모와 자녀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
② ‘가족 내 대출’ >>> 방식 전환 무이자라도 대출 형태로 전환하면 자녀는 책임감이 생기고 부모는 재정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다.
③ 금전 대신 ‘조언·경험 공유’ 중심 전환 >>> 부모가 모든 경제적 구멍을 메우는 방식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대신 취업 정보 네트워크, 의사결정 조언 처럼 비용이 들지 않는 형태로 도울 수 있다.
④ 독립 로드맵 대화 >>> “언제까지?”, “어떤 목표로?”, “비용은 어느 정도?” 이 계획을 함께 만드는 과정이 핵심이다.
① 지원 기한 설정 >>> “월세는 올해까지”, “취업 후 3개월까지 생활비 지원” 같은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무기한 지원은 부모와 자녀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
② ‘가족 내 대출’ >>> 방식 전환 무이자라도 대출 형태로 전환하면 자녀는 책임감이 생기고 부모는 재정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다.
③ 금전 대신 ‘조언·경험 공유’ 중심 전환 >>> 부모가 모든 경제적 구멍을 메우는 방식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대신 취업 정보 네트워크, 의사결정 조언 처럼 비용이 들지 않는 형태로 도울 수 있다.
④ 독립 로드맵 대화 >>> “언제까지?”, “어떤 목표로?”, “비용은 어느 정도?” 이 계획을 함께 만드는 과정이 핵심이다.
100을 주고 쓰러지는 부모보다 70을 지속할 수 있는 부모가 더 강하다
X세대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지원은 모든 것을 다 떠안는 ‘완벽한 도움’이 아니다. 부모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 만큼의 지속 가능한 도움이다.
자녀에게 100을 주지 못해도 된다. 부모가 버틸 수 있는 70·50·30을 나누는 것이 그게 새로운 부모 역할의 기준이다. 부모가 약해지면 오히려 자녀의 미래 부담이 늘어난다.
‘끝까지 다 해주는 부모’보다 ‘함께 버틸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돕는 부모’가 이 시대에 더 현실적이고 강한 설계를 가진 부모다.
100세시대연구소 김진웅 연구위원은 "지난 2022 교육여론조사에 따르면 부모들의 52.1%는 대학교 졸업까지, 17.2%는 취업까지, 6.9%는 결혼까지 지원할 계획이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은퇴자산을 관리할 때 자녀 지원과 노후 준비를 반드시 분리해서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연히 본인의 노후준비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면서 "자녀 지원을 우선 시 하다가 부모의 노후가 불안해지면 나중에 결국 다시 자녀부담으로 돌아간다. 심하면 부모자식간 갈등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은퇴=퇴장'이라는 낡은 공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평균수명 83세 시대, X세대가 본격적인 은퇴를 맞이하면서 기존의 은퇴 개념 자체가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담은 [은퇴자 X의 설계]가 매주 토요일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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