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곳은 기술기업들엔 이미 악명이 높다.
삼성전자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올레드) 특허소송에서 1억9140만달러(약 2747억원)를 배상해야 한다는 평결을 받은 곳도 마셜 법원이다. 평결을 수긍할 수는 없지만, 한국 기업과 법조인들 사이에서 패소 결과 자체보다 "역시 마셜 법원답다"는 반응이 먼저 튀어나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사건은 아일랜드계 특허 라이선싱 전문기업(NPE)이 삼성전자 주력제품인 갤럭시 스마트폰, TV, 컴퓨터 등 사실상 모든 OLED 탑재 기기가 자사 특허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해당 특허는 OLED 디스플레이 화질과 수명을 향상시키는 픽셀 구동회로와 관련된 기술이다. OLED 패널에서 각 픽셀 전압을 보상해 화면 전체의 밝기를 균일하게 유지하고 '번인(burn-in)' 현상을 줄여주는 핵심기술로 전해졌다. 세계적으로도 이 기술을 제대로 다루는 기업이 극소수인 만큼, 일반인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난도가 높고 설명하기 까다로운 기술을, 마셜 법원의 배심원단은 단 몇 시간 동안만 듣고 판단했다. 여기다 배심원단 대부분은 반도체·디스플레이와 거리가 먼 업종에서 일하는 주민으로 꾸려졌다. 기술적 사실이 아니라 감정적 판단이 재판정을 지배할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그래서 이곳에선 피고 패소율이 유독 높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7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꿔 말하면 원고 입장에서 마셜은 최적의 법정이 되는 셈이다.
다만 마셜 평결이 끝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1막'이라고 본다. 마셜을 벗어난 항소심부터 진짜 재판이 시작된다는 취지다. 반도체 기업 인텔이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는 마셜에서 22억달러(약 3조2076억원) 배상 평결을 받았으나 항소심을 통해 무효화시켰다. 애플도 일부 기능과 전체 매출을 연결한 배심의 판단을 2심 재판정에서 뒤집었고, 인터넷 장비 제조·서비스 대기업 시스코 역시 판세를 역전시켰다. 모두 미국 기업이다.
한국이 배워야 할 핵심은 분명하다. 우선 널리 알려진 미국식 배심제의 구조적 한계를 처음부터 전제한 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 기업들은 소송 가능성이 보이면 기술 관련 문서와 내부 의사결정을 세세하게 남긴다. 연구개발(R&D) 단계에서는 설계 변경 필요성 검토, 회피설계 시도 등을 투명하게 기록한다. 기술문서의 맥락, 특허범위 해석, 공정의 실질적 기여도 등을 세밀하게 다루는 항소심에서 "기술적 판단을 놓고 충분히 논의했다"는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소송 전 단계부터 법무·기술·경영이 동시에 움직이는 글로벌 기업처럼 내부 역량도 개선해야 한다. 사후로 포인트를 잡았다간 미국식 소송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 잠재적 소송 가능성을 비용으로 인식하고 매년 회계에 반영하며, 이를 전제로 기술전략을 짜는 등의 리스크 관리 또한 필요하다. 소송은 승패가 엇갈리지만, 결국 살아남는 기업은 기술력뿐 아니라 이러한 환경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곳이 될 수밖에 없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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