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30여년 만에 핵실험 재개 표명
CTBT 자체가 실효성 상실 우려높아
北·中·러 핵전력, 美에 크게 앞설 듯
北·러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 맺어
北·中·러 핵위협 대응전략 강구해야
CTBT 자체가 실효성 상실 우려높아
北·中·러 핵전력, 美에 크게 앞설 듯
北·러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 맺어
北·中·러 핵위협 대응전략 강구해야
최근 미국과 러시아 등 핵보유 강대국들 간에 핵실험 재개 여부와 관련된 힘겨루기가 전개되고 있다. 그 발단은 러시아가 먼저 제공하였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면서 러시아는 전술핵의 일부를 벨라루스에 이전배치하였고, 미국과 전략핵탄두의 제한을 약속한 뉴스타트(New START) 조약을 2026년 이후 갱신하지 않을 뜻을 비친 바 있다. 그에 더해 지난 10월 29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핵추진 수중무인기 포세이돈의 실험을 성공시키면서 자신들의 핵전력을 과시하였다.
이에 대해 10월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 중이던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 등이 핵실험을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전쟁부(옛 국방부)에 대해 핵실험 재개를 지시하였다고 소셜미디어에 공개하였다.
그러자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같은 날 국가안보 관련 회의를 긴급 소집하여 외교부, 국방부, 특수부대 등에 대해 핵무기 실험 준비에 관한 제언서를 제출하도록 지시하였다. 회의에 참석한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장관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과 함께 미국의 발언과 행동에 대응하여 러시아도 북극해 실험장에서 단기간에 핵실험을 실시할 수 있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만일 러시아나 미국이 실제 핵실험을 실시한다면, 각각 1991년과 1992년 이래 30여년간 양국이 준수해온 핵실험 금지 규범이 붕괴될 뿐 아니라 냉전기와 탈냉전기를 거치면서 양국 주도로 형성되어온 국제핵질서가 무너질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냉전기였던 1968년 미소 양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결을 주도해 국제 핵비확산 체제의 기틀을 만들었고, 탈냉전기였던 1996년에는 유엔 총회를 통해 지상이나 수중뿐만 아니라 지하에서의 핵실험도 금지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채택한 바 있다. 나아가 2010년에는 양국이 보유한 전략핵탄두를 각각 1550발로 제한하는 뉴스타트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비록 미국은 CTBT 비준을 미루고 있지만, 러시아와 더불어 다시 핵실험을 재개하면 CTBT 자체가 실효성을 상실할 것이다. 게다가 최근 핵탄두를 급속도로 늘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이 2030년대 중반까지 1500여발의 핵탄두를 보유하게 되면 미러 간의 뉴스타트 조약 상한선도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국내 일부 핵공학 전문가들이 전망하듯 북한도 현재 60여발에 이르는 핵탄두를 향후 10년 내에 200~300발 수준으로 증강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경우 북중러 3국의 핵전력 합계는 최소 3500여발에 달하게 되어 미국의 현 수준을 크게 상회하게 된다.
한국은 지금까지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한미 간 확장억제 태세 구축에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왔고, 핵협의그룹(NCG) 창설 등의 성과를 거두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24년 북한과 러시아가 체결한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은 평시나 유사시에 양국이 군사 및 비군사 분야를 망라한 포괄적 협력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러시아의 핵전력 태세도 북한의 그것과 더불어 우리의 안보정책 범위 내에서 주요 관심사항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최근 미국 내에서도 북중러 3개국의 핵태세 변화에 대한 우려를 바탕으로 새로운 핵정책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 미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최근 포린어페어스에 공동기고한 글을 통해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뿐 아니라 러시아 및 중국이 함께 교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으로서는 북중러 3국의 핵위협에 대응하는 핵태세 강화를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헤리티지재단의 로버트 피터스 선임연구원은 아예 미국의 핵전력 규모를 4600발 수준까지 늘려 북중러 3국의 핵전력 증대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0월의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지원을 통한 핵추진잠수함 확보 방향이 합의된 것은 다행스러운 진전임에 분명하다. 동시에 국제 핵질서의 동요와 그에 대응하는 미국 내 핵전략 논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 핵위협뿐만 아니라 그와 군사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여타 국가들의 핵태세 변화에도 대응하는 우리 안보정책이 재점검되어야 할 시기이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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