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에는 AI를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지에 대해 가르치다가 정작 학기말 시험이나 과제에서는 AI를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
AI 이전 시대의 교육은 주로 학생의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지식이 저장되어 있고, 그것을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꺼내 쓸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AI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식 도구가 된 지금, 이러한 평가방식은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전화번호를 외우는 것이 필요한 능력 중 하나인 시절이 있었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지금은 지인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곤란해지는 일은 없다.
오늘날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고의 확장 도구다. 그렇다면 대학은 학생이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묻는 대신 '어떻게 사고하고 판단하는가'를 평가해야 한다. AI가 지식을 대신 저장하고 정리해주는 시대의 평가는 기억의 양이나 정확성이 아니라 정보 활용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전환은 쉽지 않다. 학생이 AI를 활용해서 얻은 학습의 성과를 평가하려면, 기존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교수진은 단순히 결과물을 채점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어떤 질문을 던졌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이는 학습의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읽어내는 일이다. 강의는 이제 AI에 맡기고 교수는 학생들의 학습 과정을 평가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될 수도 있다. 1000명이 수강하는 대규모 온라인 강의에서도 평가는 수십명의 교수가 나누어서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와 투자는 장기적인 교육혁신을 위한 필수 과정이다.
대학은 자유로운 상아탑이니 이미 잘 알아서 대비하고 있지 않을까 싶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돈이 많이 드는 새로운 평가방식을 채택하기에는 부족한 대학 재정이라 보수적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다. 이런 대학을 움직이려면 결국 정부의 지원과 대학에 대한 평가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AI 시대에 걸맞은 인재상을 추구하는 새로운 성적 평가방식의 도입을 과감하게 지원하고, 대학을 평가할 때도 그러한 변화를 충분히 인정해주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지만, 교육에서는 마지막 단추인 '성적 평가'가 잘 끼워져야 한다. 영리한 학생들은 성적을 잘 받기 위한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김민성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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