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격노'로 촉발돼 조직적 은폐 판단
'군 통수권' 넘어 軍독립적 수사권 위협
'군 통수권' 넘어 軍독립적 수사권 위협
[파이낸셜뉴스]채상병 특별검사팀(이명현 특검)이 순직 해병 사건 수사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 12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군통수권자로서의 일반적 수사기관 지휘권을 넘어 특정 사건에 대해 개별·구체적인 지시를 내려 군사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또 이 전 장관 등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분담해 실행한 '중대한 권력형 직권남용 범죄'라고 결론냈다.
정민영 채상병 특검보는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순직해병 사망사건 관련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결과 변경을 위해 외압을 행사한 윤 전 대통령 및 이 전 장관 등 관계자 12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으로 오늘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특검은 이날 오전 9시께 서울중앙지법에 공소장을 접수했다.
기소된 이들은 △윤 전 대통령 △이 전 장관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신범철 전 국방부차관 △전하규 전 국방부 대변인 △허태근 전 국방부정책실장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박진희 전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 △김동혁 전 국방부 검찰단장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 △유균혜 당시 국방부 기획관리관 △이모 당시 조직총괄담당관 등이다.
특검팀은 피의자 주거지 압수수색과 130여회 조사를 통해 약 2년 동안 은폐돼 온 'VIP 격노' 실체를 확인했다고 한다. 특검에 따르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혐의자로 포함된 해병대수사단의 초동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윤 전 대통령은 격노해 임 전 사단장 등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이 전 장관이 수사결과 변경을 위해 박정훈 당시 해병대수사단장(대령)에게 수사기록 이첩 보류라는 위법·부당한 지시를 내렸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채 해병 사망 사건'이라는 특정 사건에 '임 전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을 피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개별적·구체적 지시를 하고, 이 전 장관 등이 위법·부당한 지시를 순차적으로 수명 및 하달함으로써 직권을 남용해 군사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직무수행의 독립성을 침해한 사안"이라고 결론지었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이 조 전 실장을 통해 사건기록 회수를, 신 전 차관을 통해 박 대령에 대한 선보직해임 및 항명 수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이 일련의 직권남용 행위의 정점에 있고, 단순히 어떤 수사결과에 대해 1회 의견을 낸 것이 아니라, 처음 국방부 장관까지 이견 없이 결재된 수사결과에 격노하고, 적법하게 이첩된 기록을 회수해오라는 지시를 하는 등 통수권자가 행사할 수 있는 재량의 한계를 완전히 넘었다"고 평가했다.
이 전 장관은 "현장 통제 간부의 트라우마를 우려해 이첩 보류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지만, 국방부 조사본부 재검토 초안에도 임 전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은 여전히 혐의자로 포함돼 있었다. 이후 다섯 차례 재검토를 거치면서 임 전 사단장 등 간부 4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제외되고 사실관계만 기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박 대령이 이 같은 지시에 불응하고 경북경찰청에 기록 이첩을 시도하자, 조직적 보복 수사와 기소가 진행된 정황도 드러났다. △김 전 사령관의 '선보직해임' △김 전 단장의 항명 수사 △유 전 관리관의 기록 회수 △국방부조사본부 이관 후 박 전 보좌관 주도의 수사결과 변경 등 일련의 조치가 '권력형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른 당사자들은 항명 수사, 모해 위증, 국회 위증,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등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은 군검찰의 편파 수사와 증거 제출 등 공소권 남용 행위에도 직권남용죄를 적용했고, 항명 수사 관련 비밀을 대통령실에 누설한 혐의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편 임 전 사단장 관련 개신교계 및 ‘멋쟁해병’ 단체대화방을 통한 구명 로비 의혹은 공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다. 특검은 추가 조사 및 재판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해당 내용을 다룰 계획이다.
수사 과정에서 조력한 일부 인물은 기소유예(혐의가 있지만 여러 정황을 참작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 처분을 받았다. 국방부와 경찰을 연결한 공범 이시원 전 공직기강비서관, 조 전 실장이 국회에 제출한 허위 답변서를 작성한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 등은 조력 사유가 인정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특검은 이 전 장관 등 핵심 수사외압 혐의자 5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법정에서 범죄 사실 입증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검팀은 "앞으로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해 각 범행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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