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회사가 미래를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기술력이나 자본력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오래 해왔다. 최신 마케팅 기법을 빠르게 흡수하고, 이름값 높은 인재들로 조직을 채운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미래를 여는 회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짜 경쟁력은 그보다 더 사람 중심적이고, 더 문화적이며, 더 깊은 곳에서 자란다.
강한 회사는 서로 다른 재능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을 줄 안다. 조직 구성원들이 각자의 의견을 경쟁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더해 더 좋은 해답을 만드는 방식을 알고 있다.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배민은 “우리 서비스를 써야 하는 이유”를 앞세우지 않았다. 대신 “이 브랜드 참 괜찮네”라는 감정을 먼저 키웠다. 사용자는 어떤 기능을 쓰기 전에 브랜드를 떠올렸고, 브랜드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서비스를 찾았다. 이 흐름을 만들어낸 것은 광고 문구 한 줄이나 캠페인 기획 몇 개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분위기와 태도, 서로의 생각을 안전하게 더할 수 있었던 문화가 있었다.
배민의 마케팅이 강력했던 이유는 그 회사가 가진 문화적 에너지 덕분이었다. 팀원들이 각자 다른 감각을 가져도 충돌을 걱정하지 않고 의견을 냈고, 그 차이가 곧 배민 특유의 창의성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외부에서 쉽게 베낄 수 없는 힘이다. 조직이 가진 분위기 자체가 마케팅의 자산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배민은 그런 브랜드였다.
그 문화를 만든 사람이 창업자인 김봉진 의장이었다. 창업자는 단순히 사업 모델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회사가 어떻게 일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지 결정하는 사람이다. 배민의 무게중심은 언제나 ‘사람’과 ‘브랜드’에 있었다. 김 의장 체제의 배민에서 나온 광고들을 떠올려보면, 유머와 따뜻함, 개성과 여유 같은 감정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감정들이 쌓여 브랜드 호감이 됐고, 그것이 다시 서비스 이용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 배민은 중요한 변곡점 앞에 서 있다. 김봉진 의장과 주요 경영진이 떠나고 새로운 리더십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인사 이동이 아니다. 배민이 가진 마케팅 철학과 조직문화가 앞으로도 같은 방향을 유지할지, 혹은 다른 색깔로 바뀔지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창업자가 만들어낸 정신을 조직이 얼마나 오래 지켜낼 수 있을지는 어느 회사든 쉽지 않은 문제다.
이 변화는 곧 시장의 경쟁 구도에도 영향을 준다. 특히 배민과 쿠팡이츠의 경쟁은 이제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 두 회사는 같은 시장을 두고 싸우지만, 접근 방식은 꽤 달랐다. 배민이 브랜드 호감과 문화적 힘을 앞세웠다면, 쿠팡이츠는 효율과 속도, 성능을 더 강조해 왔다. 이제 배민의 리더십이 교체되면서 이 대결의 성격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배민이 문화적 힘을 유지할지, 아니면 보다 기능 중심의 방식으로 이동할지에 따라 시장의 흐름이 달라질 것이다.
두 회사의 경쟁을 바라보면 단순히 배달 시장의 점유율 싸움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어떤 마케팅을 더 인정하는지 알 수 있다. 여전히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브랜드 중심의 전략이 힘을 가질지, 혹은 기능성과 속도로 승부하는 전략이 주류가 될지 흥미롭게 관찰할 만하다.
미래를 바꾸는 회사는 얼핏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인간적인 요소에서 출발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더해 더 나은 생각을 만들 수 있게 돕는 문화, 브랜드를 좋아하게 만드는 힘, 그리고 그 힘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 배민의 다음 장면은 그래서 더 궁금하다. 이 회사가 가진 독특한 매력이 계속될지, 아니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시장에 새 질문을 던질지 지켜볼 일이다.
박용후/관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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