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소명 못하면 3억 갚아야돼"...'범죄 연루' 협박에 흔들린 40대 직장인 [조선피싱실록]

이주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23 15:08

수정 2025.11.23 16:15

사진=생성형 인공지능(AI)
사진=생성형 인공지능(AI)
[파이낸셜뉴스] 서울에 사는 42세 남성 A씨는 지난 9월 어느 날, 회사에서 근무하던 도중 전화 한통을 받았다. 전화 너머 B씨는 자신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조사관이라고 소개했다. A씨 신원정보를 줄줄 읊더니 그가 '성매매 알선' 사건에 연루됐다고 설명했다. 무려 "피해금이 70억원, 피해자가 150명"이라며 "범인은 잡혔으나 A씨가 소명하지 않으면 약 3억원을 피해자들에게 갚아야 한다"고 알렸다.
"범죄 사건 연루...소명하지 않으면 피해금 대신 갚아야 된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B씨는 법원에서 제공하는 '나의 사건검색' 홈페이지에서 해당 사실을 확인해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B씨의 말을 믿지 않던 A씨는 우선 사이트에 접속해 봤다. 직접 이름, 나이, 주민번호 등 인적사항을 입력하니 실제 있는 사건이었다. 검찰 공문에 은행 거래내역, 구속영장까지 게시돼 있었다. 특히 구속영장에 본인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니 '멘붕'(갑작스러운 충격이나 혼란으로 정신이 무너진 상태)이 왔다.

B씨는 "김철수(가명)라는 ㄱ은행 직원을 알고 있냐"며 "은행원이라 개인정보에 접근하기 쉬워 A씨의 개인정보로 통장을 개설해 성매매 알선에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ㄱ은행은 평소 A씨가 자주 사용하던 은행이었다. 더군다나 사건검색 홈페이지에 실제 사건으로 뜨기까지 하니 A씨는 범죄에 연루됐다는 불안감과 걱정에 순식간에 휩싸였다.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 B씨에게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었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불법요소 없는지 금융자산 확인하겠다"...보유계좌 전부 진술하도록 지시
B씨는 담당 검사에게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라고 밝힌 C씨는 먼저 새 휴대폰을 개통해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이 앱은 수·발신 번호를 조작하고, 통화·메시지 내역을 감시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연락은 임시 폰으로 하고, 금융 앱을 이용하라고 지시할 때만 본폰에 유심을 교체해서 이용하라고 설명했다. 금융 앱에 접속한 단말기 정보가 바뀌면 금융회사에서 이상거래로 탐지한다는 점을 알고, 금융거래 시에만 본폰을 이용하게 한 것이다.

이후 C씨는 "국세청과 협업해서 A씨의 금융자산에 불법적인 요소가 없는지 확인해보겠다"며 재산 파악에 들어갔다. 보유 중인 계좌를 모두 진술하게 하면서 절대 전화를 끊지 못하게 했다. 계속 통화를 하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던 C씨는 "현재 A씨 대출이 1개 있는데, 추가 대출이 되면 안되는 상황에서 별다른 검증없이 4400만원이 대출된 것을 보니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겁을 줬다. 그리고 "이 돈은 예금보호를 해야 하니 알려준 계좌로 4400만원을 이체하라"고 지시했다. 이 돈은 추후 한국신용정보원에 요청해 다시 A씨에 돌려줄 것이라고도 했다.

"피해자 입증해줄게"...2차로 또 이체 요구
나중에 돈을 돌려주겠다는 말에 A씨는 크게 고민도 하지 않은 채 즉시 돈을 입금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C씨는 이제 '공범 색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범 색출을 위해 금융감독원에서 관리하는 계좌로 300만원을 입금하라는 것이다. 이상 거래를 발생시키는 방법으로, 수사에 협조한다면 범행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피해자 입증 서류'를 작성해주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결국 A씨는 주택청약 계좌 해지 등 돈을 마련해 송금했다. 앞서 보낸 돈까지 5000만원에 가까운 금액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금감원 관계자는 모든 공공기관은 현금 전달, 계좌 이체, 원격제어 앱 설치 등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특히 국가기관 등을 사칭해 전화나 문자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경우 즉시 전화를 끊어야 한다. 사건조회, 자산검수·자산이전, 특급보안·엠바고 등을 요구하면 명백한 보이스피싱이라고 의심해야 한다. 사칭범 이름이나 그가 전송한 서류가 의심스럽다면 카카오톡 '대검찰청 찐센터'로 연락해 확인하면 된다.

전화 한통에 금전뿐 아니라 삶까지 빼앗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조선피싱실록]은 금융감독원과 함께 고도화·다양화되고 있는 보이스피싱 등의 수법을 매주 일요일 세세하게 공개합니다. 그들의 방식을 아는 것만으로 나를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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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fnnews.com 이주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