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이미 걸렸더라도 백신 접종을"
독감 환자가 전국 곳곳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예년보다 두 달 가까이 앞당겨진 확산세로 의료기관의 긴장감도 커졌다. 특히 초등학생 사이에서 감염이 두드러지며, 다음 주쯤 유행이 정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위험군 중심의 백신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미접종자 전반으로 접종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병원 '오픈런'… 가족 감염 우려도
24일 오전 9시께 경기 고양시의 한 내과에서는 진료 시작 전부터 기침 소리가 이어졌다.
초등학생 3학년 딸을 데리고 온 김모씨(42)는 "아이가 주말부터 기침을 많이 하고 열도 심해져서 담임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진료 시작 시간에 맞춰 달려왔다"며 "최근 독감이 유행이고, 아이 친구들도 감기에 많이 걸리는 추세라 학교 차원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감 판정을 받은 중학교 3학년 한모군(15)도 "토요일에 간 영어학원에서 기침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마스크를 안 낀 탓인지 옮은 것 같다"며 "곧 기말고사 시기인데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아직 감염되지 않은 시민들의 불안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가벼운 증상만 있어도 병원을 찾거나 예방접종을 서두르는 분위기다. 특히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가족 단위 감염에 대한 긴장감을 드러냈다.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최모씨(45)는 "아이가 열에 취약해서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약을 먹이고 초반에 치료하려 한다. 어르신들 역시 감염되면 열, 기침 등 증상이 심해지기 때문에 할머니·할아버지께 옮기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전했다.
직장 내 감염 확산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강남구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권모씨(28)는 "회사에 독감으로 고생하는 분이 있는데 옮을까 봐 무섭다"고 우려했다.
의심환자 66.3명… 전년의 14.4배
질병관리청 인플루엔자 표본감시에 따르면 올해 46주차(11월 9~15일) 의원급 표본감시 의료기관 300곳을 찾은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증상을 보인 의심 환자는 66.3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 주(50.7명)보다 30.8% 증가한 수치다. 해당 지표는 42주차 7.9명에서 매주 오름세를 이어왔다. 특히 올해 46주차 의심 환자는 전년 동기(4.6명)의 14.4배에 달했다. 김동근 질병관리청 호흡기감염병대응TF 팀장은 "앞으로도 독감 유행이 상승 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연령대별로는 7~12세(170.4명), 13~18세(112.6명) 등 학령기 아동·청소년의 집중도가 두드러졌다. 강남구의 한 소아과 관계자는 "단체생활을 하는 초등학생 독감 환자가 많다"며 "첫째가 걸리면 뒤따라 둘째도 걸리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유행의 핵심을 '학령기 전파'라고 진단한다. 김우주 고려대 의과대학 백신혁신센터 교수는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유치원·중고생을 거쳐 부모, 조부모에게까지 동심원처럼 번지는 구조"라며 "아이들은 많이 걸리지만 대부분 가볍게 지나가는 반면 고령자, 만성질환자, 면역 저하자들이 중증 피해를 입게 된다"고 풀이했다.
김 교수는 정부의 백신 정책이 고위험군에 치우쳐 있어 유행 규모 자체를 통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질병청은 65세 이상 어르신, 임신부, 생후 6개월~13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무료 국가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지만, 학령기 어린이(7~13세) 접종률은 47.2%(45주차 기준)로 낮은 편이다. 이에 독감 유행을 줄이려면 고령자나 면역 저하자뿐 아니라 6개월 이상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폭넓게 접종을 권고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올해 독감 유행은 다음 주쯤 정점을 찍을 것"이라며 "이번 A형(H3N2) 유행이 지나도 내년 2~3월 다른 A형(H1N1) 또는 B형 독감이 다시 돌 가능성이 있어, 이미 독감에 걸렸던 사람도 회복 후 백신 접종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이어 "코로나19 역시 내년 1~2월 또 한 번 겨울 유행이 올 가능성이 크다"며 "65세 이상은 이번에 독감 백신과 함께 코로나 백신도 같이 맞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박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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