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연구개발지출(GERD·Gross Domestic Expenditure on R&D)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의 이 비중은 약 4.9%로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하고 주요국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있다.
미국은 2022년 약 3.4%, 일본은 약 3.3%, 대만은 약 3.6%이고 중국은 2021년 기준 아직 약 2.4%이다. R&D 절대 규모는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이다. 미국 국립과학위원회(NSB)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의 GERD는 약 8060억달러이고 중국은 2021년 약 6676억달러다.
한국은 2021년 약 1196억달러로 일본의 3분의 2가량이며, 대만은 약 556억달러로 한국의 2분의 1에 머물고 있다. R&D 투입 규모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이나, 우리도 높은 R&D 집약도로 인해 세계 주요국과 비교할 만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재명 정부는 2026년 예산편성에서 지난 정부에서 감액된 R&D예산을 상당히 증액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성장이 기술혁신에 달린 상황에서 이러한 조치는 환영할 만하다.
문제는 R&D의 양적 확대가 산업 전반의 진짜 기술혁신을 담보하지 못하는 점이다. 다수의 실증 분석에 의하면 R&D 지출 증가가 반드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산업연구원(KIET)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 R&D투자 증가는 매우 가파른 데 비해 특허, 기술혁신지표, 총요소생산성(TFP) 등 성과는 미흡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제조업 R&D투자는 연평균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인 반면 같은 기간 제조업의 TFP 증가율은 하락하거나 정체되는 경향이었다.
특히 2000~2008년 제조업의 TFP 증가율이 연평균 약 1.8%였던 것에 비해 2010년대 이후 증가율은 1%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분석되었다. 같은 기간 기업 R&D투자율은 GDP 대비 계속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비례적으로 증가하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기업 R&D투자가 매출·수익성 개선에 미치는 효과는 산업별 큰 편차가 존재하며, 다수 산업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생산성 개선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분석하였다. 일부 산업에서는 오히려 R&D투자가 늘어난 기간 TFP가 감소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기술개발이 사업화와 생산성 증가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R&D 과제와 연구기관 선정 과정상 관료주의, 산업 간·기업 간 R&D 불균형, R&D와 사업화 연결 메커니즘 부재 등 다양한 요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R&D예산을 늘려서 기술혁신 역량을 제고하는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다. 다만 제한된 R&D 자원을 감안하는 경우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현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하여 사업화 촉진 등 미시적으로 성과를 제고하는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관의 R&D 성과 제고를 위한 부단한 개선 노력을 기대해본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