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 "엄마, 걷고 싶어요" 9살 지연이의 악몽 [우리 아이 체육관, 믿을 수 있나①]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28 07:00

수정 2025.11.28 07:18

[청주 '하반신 마비' 모녀 병상 인터뷰]
9살 아이 체육관서 척수 손상 '회복 어렵다' 날벼락
'관장 등에 업혀가는 아이' 모습 CCTV 화면 입수
법적공방 예상에 끝 없는 병원비까지 이중고
합기도 체육관에서 무리한 동작으로 인해, 하반신 마비가 된 9살 아이가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 사진=한승곤 기자·가족제공
합기도 체육관에서 무리한 동작으로 인해, 하반신 마비가 된 9살 아이가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 사진=한승곤 기자·가족제공
지난 5월 충북 청주의 한 합기도 체육관에서 9세 여아가 훈련 도중 척수 손상을 입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사고 직후 초기 대응 미흡과 안전 관리 부실 논란이 제기됐으나, 체육관 측은 기저질환 가능성을 주장하며 책임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본지는 피해 아동 어머니·여아를 직접 만나 당시 상황과 의료 기록을 입수했다. 총 3회에 걸쳐 이번 사건의 전말과 국내 체육 시설 안전망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지난 20일, 기자가 찾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인근 카페. 휠체어에 앉은 9살 지연(가명)이는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화면 속에서는 인기 걸그룹 '아이브(IVE)'가 화려한 조명 아래서 춤을 추고 있었다. 지연이는 멤버 중 리즈를 가장 좋아한다고 수줍게 말했다. 그러나 어리광을 부리고 천친난만해야 할 지연의 표정은 무겁고 어두워보였다.

자리에 동석한 지연이 어머니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니는 "사고 전 거실은 지연이의 무대였어요. TV 속 아이브의 안무를 한 동작도 놓치지 않고 따라 하던 아이였습니다"며 "그렇게 활발하고 춤추기 좋아하던 아이가 지금은 화면 속 언니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한다"면서 안타까워했다. 거실을 누비며 춤을 추던 건강한 두 다리는 지난 5월의 그날, 체육관 사고 이후 움직임을 멈췄다.

지연이가 관장 어깨에 업혀 축 늘어진 채 합기도 체육관 차로 향하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가족제공
지연이가 관장 어깨에 업혀 축 늘어진 채 합기도 체육관 차로 향하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가족제공

"신발도 없이 축 늘어져"...베란다에서 본 끔찍한 모습

사고 당일 오후,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베란다 창가에 앉아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연이에게 선물할 신발을 막 완성하고 사진까지 찍어둔 참이었다.

평소라면 체육관 차가 놀이터 앞에 정차하고 아이가 손을 흔들며 내렸겠지만, 그날은 달랐다. 어머니는 "평소와 달리 차가 주차장 쪽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고 토로했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관장이 차 뒷문을 열고 아이를 업고 나오는 모습이 어머니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지연이가 하얀색 크록스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신발 한 짝이 벗겨져 바닥에 떨어졌다"며 "관장이 당황해서 다시 신기려 했지만, 아이 발이 힘없이 축 늘어져 자꾸만 신발을 놓치는 것을 보고 미친 듯이 뛰어 내려갔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전했다.

어머니가 1층으로 내려갔을 때, 지연이는 관장의 등에서 인형처럼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어머니가 "왜 업고 오시냐"고 묻자 관장은 "다리에 힘이 없대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아이가 남자 선생님 등에 업혀 있는 걸 불편해할까 봐 "지연아, 엄마랑 걸어가자"며 아이를 내렸지만, 아이는 서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지연이를 위해 어머니가 직접 만든 슬리퍼. 하지만 사고로 당분간 이 슬리퍼를 신고 뛰어다닐 수는 없다. 사진=한승곤 기자·가족제공
지연이를 위해 어머니가 직접 만든 슬리퍼. 하지만 사고로 당분간 이 슬리퍼를 신고 뛰어다닐 수는 없다. 사진=한승곤 기자·가족제공

'골든타임' 놓친 30분... "119만 불렀어도"

지난 5월 20일, 충북 청주의 한 합기도 체육관. 관장 A씨(50대)의 지도 하에 '배 들어 올리기(브릿지 자세에서 공중 회전)' 동작을 하던 중 지연이는 그대로 매트 위로 쓰러졌다.

문제는 사고 직후의 대처였다. 지연이는 사고 직후 "등이 아프다", "다리에 감각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관장의 선택은 119 신고가 아니었다. 오히려 약 30분간 수업이 더 진행되는 동안 아이는 방치되었다.

지연이의 고통은 병원 이송 과정에서도 계속되었다. 인근 지역 병원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고, 지역 종합병원을 거쳐 거점 병원으로 갔지만 상태는 악화되었다. 어머니는 "거점 병원에서 MRI를 찍은 과장님이 '척수액 흐름이 이상하다'며 심각하게 보셨다"며 "서울의 대형병원들에 전화를 돌려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한 병원에 간곡히 부탁해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서울에서 정밀 진단을 한 의료진의 진단은 절망적이었다. 의료진은 "척수 손상 범위가 넓어 다시 걷기는 힘들다"며 "사실상 기적이 아니고서는 회복이 어렵다"는 비관적인 소견을 내놓았다.

하반신 마비 판정을 기록한 병원 진단서. 사진=한승곤 기자·가족제공
하반신 마비 판정을 기록한 병원 진단서. 사진=한승곤 기자·가족제공

"독감 한 번 안 걸렸는데"... 기저질환 공방

가장 큰 분노를 자아내는 것은 관장의 태도다. 사고 발생 6개월이 지난 현재, 관장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원래 아이에게 기저질환이 있어 마비가 온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어머니는 "기저질환이라니 말도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어머니는 "우리 아이는 독감도 한 번 안 걸렸을 만큼 건강했고, 유행병이 돌어도 그냥 넘어가는 아이였다"며 "병원에서 혹시나 해서 척추에 긴 바늘을 꽂아 척수액 검사까지 했지만 결과는 '정상'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의 주장대로라면, 건강했던 9살 아이가 하루아침에 하반신 마비가 된 원인은 명백히 외부 충격에 있다. 하지만 체육관 측은 의학적 소견과 배치되는 '기저질환설'을 내세우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위로금'…벼랑 끝에 선 모녀

피해 보상 문제도 막막하다. 관장은 위로금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으나, 이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아이와 그 가족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어머니는 관장과의 통화 내용을 언급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관장님이 사정이 어렵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위로금을 주겠다고 하길래, '혹시 그 금액을 저희 아이 목숨값으로 책정하신 건 아니겠죠?'라고 되물었다"며 "또 돈을 떠나서 진심 어린 사과나 성의를 보였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사고 후 6개월, 가정의 경제적 상황은 벼랑 끝이다. 한 부모 가정인 상황에서 어머니는 간병을 위해 휴직을 한 상태지만, 수입은 줄어든 반면 치료비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머니는 "육아휴직 급여가 나오지만, 병원비만 한 달에 수백만 원이 넘게 든다"며 "숨만 쉬어도 마이너스인 상황이라 지인들의 후원과 대출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털어놨다.

하반신 마비로 '발톱' 빠진줄도 모르는 지연이

어머니는 인터뷰 도중 아이의 발 상태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어머니는 "아이가 다치고 나서 하반신에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지금 발톱이 하나하나씩 빠지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휠체어에 앉은 아이는 자신의 발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이런 가운데 어머니는 최근 병실에서 있었던 가슴 아픈 일화를 털어놓았다. 얼마 전 사촌 언니가 병문안을 와서 비누방울 놀이를 했는데, 지연이가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지연이가 비누방울이 떠다니는 걸 보더니 저한테 조용히 '엄마, 나 순간 뛰어노는 느낌이 났어. 걷는 것 같았어'라고 말했어요"라며 끝내 눈물을 훔쳤다. 기자와 어머니의 인터뷰를 옆에서 조용히 듣던 아이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다시는 들지 않았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로 송치되었고, 책임 소재를 둘러싼 공방이 예상된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과 유사한 과거 판례를 통해 향후 법적 쟁점을 가늠하고 있다.


지난 2006년 4월 대구지법은 체육 수업 중 학생의 신체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운동을 지시해 상해를 입힌 교사에게 업무상 주의 의무 위반을 인정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지도자가 학생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 역시 관장이 고난도 기술 지도 과정에서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그리고 사고 직후 적절한 구호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가 법적 판단의 주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