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혼인신고하면 대출액 뚝" 신혼부부를 '동거족' 만드는 나라 [주말의 디깅]

성민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29 06:00

수정 2025.11.29 06:00

[혼인신고 앞두고 계산기 두들기는 사정]
저금리 대출, 주택청약에서 불리한 '결혼 페널티'
아기 낳기 직전까지 비혼상태 유지하는 부부 많아
[파이낸셜뉴스] 지난해 혼인 외 출생아 비중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혼인신고를 미루는 부부가 늘어나면서 결혼은 했지만 법적 혼인 절차를 완료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 아기가 증가한 결과다. 이처럼 요즘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들은 혼인신고가 이득인지 손해인지까지 계산해 행동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혼인신고를 미루는 부부는 꾸준히 늘고 있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가데이터처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년 이상 혼인신고를 미룬 비율은 2014년 10.9%에서 2018·2019년을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4년 19%까지 올랐다.

2년 이상 지연 비율도 2014년 5.2%에서 2021년 7%대로 올라섰고, 지난해에는 8.8%까지 확대됐다.

혼인신고 지연 비중
혼인신고 지연 비중

신혼부부가 혼인신고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주택담보대출의 소득 요건이 꼽힌다. 대표적 서민 정책 금융상품인 ‘디딤돌 대출’은 미혼 1인 가구일 경우 연 소득 6000만원 이하라면 최대 2억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신혼부부는 부부 합산 소득이 8500만원 이하로 묶인다. 맞벌이 부부라면 각자 연봉이 4250만원만 넘어도 저금리 대출 기회를 잃게 되는 구조다.

정부는 지난 3월 청약 제도 개편을 통해 부부 중복 청약을 허용하는 등 ‘결혼 페널티’ 해소에 나섰지만, 현장 체감도는 여전히 낮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결혼한 직장인 박모씨는 "부부가 각각 청약을 넣을 수 있게 바뀌었지만 여전히 부부 소득을 합산하면 불리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씨 부부는 청약 조건이 더 유리한 남편이 단독으로 청약을 넣어 당첨됐고, 2027년 입주를 앞두고 있다.

주말의 디깅 청약 합산소득 불이익
주말의 디깅 청약 합산소득 불이익

혼인신고를 먼저 하는 편이 주택 마련에 유리해 결혼식에 앞서 혼인신고를 한 사례도 있다. 내년 2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직장인 김모씨는 "우리 부부는 합산 소득이 8500만원을 넘지 않아 혼인신고를 먼저 하는 것이 유리했다"며 "다문화 가정이라 디딤돌 대출 우대금리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종합부동산세 부담도 혼인신고를 미루는 요인으로 꼽힌다. 내년 4월 출산을 앞둔 최모씨 부부는 "결혼 전 부부가 각각 아파트를 한 채씩 갖고 있었다"며 "혼인신고를 하면 다주택자로 분류돼 종부세가 700만원 이상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씨는 "주변에서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혼인신고를 미루라'고 조언하는데, 세금을 덜 내려고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부부가 각자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씁쓸하다"라고 덧붙였다.

혼인외 출생아 수 추이
혼인외 출생아 수 추이

이와 같은 구조 속에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의 비중는 지난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정일영 의원이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신고된 혼인 외 출생아는 1만382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4년에 비해 63.4% 증가한 수치다.

전체 출생아 중 혼인 외 출생 비중은 5.8%로, 아기 100명 중 6명이 법적 혼인관계가 아닌 가정에서 태어난 셈이다. 불과 5년 전(2.5%) 대비 두 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다른 나라들의 상황은

'결혼 페널티'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위스에서는 부부 두 사람이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올릴 경우 연간 최대 4만 스위스프랑(약 6883만원)의 세금이 추가로 발생하는 부부 공동과세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때문에 혼인신고 없이 결혼식만 올리는 커플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스위스 의회는 지난 6월 부부 공동과세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고, 직접 민주주의 국가 특성상 내년 3월 국민투표에서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프랑스 역시 부부 공동과세 국가라 결혼 시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자녀가 많을수록 세 부담이 줄어드는 가족분할제도를 통해 이를 완화하고 있다. 1인 가구의 가족 계수는 1, 2인 가구는 2, 자녀가 1명인 가구는 3.5, 자녀가 3명인 가구는 4를 적용해 가족계수로 소득을 나눠 과세함으로써 누진 부담을 낮추는 방식이다. 한국 정부도 저출생 완화 대책의 일환으로 프랑스식 가족 과세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만35세 미만 청년이 결혼이나 출산을 하는 경우 공공주택 분양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으로 20대 미혼 청년의 결혼율이 45%에서 60%까지 상승했다. 다만 이로 인해 싱가포르에서는 도리어 혼인신고 앞당기기가 늘었고, 이로 인해 이혼율도 높아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시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혼인신고 지연과 혼인 외 출생 증가 현상은 결혼 당사자인 청년과 신혼부부가 자신이 처한 제도적 경제적 조건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집값 상승과 주거난이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결혼을 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정교한 제도의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디깅 digging'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땅을 파다 dig]에서 나온 말로, 요즘은 깊이 파고들어 본질에 다가가려는 행위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주말의 디깅]은 한가지 이슈를 깊게 파서 주말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sms@fnnews.com 성민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