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아파트 공사에 대나무라니"… 홍콩 최악의 화재 참사 불렀다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27 15:05

수정 2025.11.27 15:06

홍콩 '웡 푹 코트' 화재 사망 44명·실종 279명 실종자 많아 사망자 계속 늘 듯 홍콩은 여전히 대나무 비계 중심...피해 규모 키워
27일 전소된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웡 푹 코트' 아파트 단지에 소방관들이 물을 뿌리며 잔불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전소된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웡 푹 코트' 아파트 단지에 소방관들이 물을 뿌리며 잔불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초고층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노후 건물 구조와 대나무 비계, 가연성 보호재가 '불쏘시개'로 작용하며 피해 규모를 극대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사망 44명, 실종 279명, 위중 환자 45명 등 인명 피해가 확인됐다. 실종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 소방당국은 지난 26일 오후 2시 51분 첫 신고 접수 후 불길이 폭발적으로 확산했다고 밝혔다. 첫 발화 지점에서 튀어 나온 대나무 비계 조각과 잡동사니가 강풍을 타고 인근 동으로 날아가며 전체 8개 동 중 7개 동으로 화염이 번진 것으로 추정했다.

건물 외벽의 보수 공사 과정에서 설치된 비계 구조가 화재 확산에 핵심적인 원인으로 분석된다.

홍콩에서는 전통적으로 건물 공사에 대나무 비계를 널리 사용해 왔다. 중국 본토·싱가포르 등은 건축 안전 기준 강화에 따라 대부분 금속 비계로 전환했지만, 홍콩은 대체 속도가 더디다. 대나무 비계는 설치가 빠르고 비용이 저렴한 반면 고온에서 쉽게 타고 부러지는 취약점이 있어 안전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2019∼2024년 사이 홍콩에서는 대나무 비계 관련 사망 사고가 22건 발생했다. 홍콩 정부는 올해 3월 공공 공사의 50%에 금속 프레임 사용을 의무화했으나 민간 현장에는 여전히 대나무 비계가 남아 있다. 홍콩에서는 올 들어 최소 3건의 대나무 비계 화재가 보고됐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공사 관계자 3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했다. 비계 주변에 설치된 보호망·필름·방수포·스티로폼 소재가 난연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창틀 보수 과정에서 사용된 우레탄폼이 불길을 수직·수평 방향으로 급속히 확산시켰을 가능성도 조사 중이다.

현지 언론은 공사 과정에서 작업자의 흡연 문제를 지적하는 민원이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됐다고 전했다. 불에 잘 타는 자재가 외벽에 대거 노출된 상태에서 기본적인 '불씨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중대한 안전 관리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웡 푹 코트'는 1983년 준공된 노후 단지로, 총 1984가구·약 4600명 이상이 거주하는 대형 공공 분양 아파트다. 가구 면적은 48∼54㎡로 작아 인구 밀도가 매우 높다.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주민의 36.6%가 65세 이상으로 고령층 비중도 홍콩 평균을 훨씬 웃돈다. 불길이 단시간에 여러 동으로 확산된 상황에서 고령자·저층 밀집 거주자들의 이동 속도가 느려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홍콩 소방당국은 신고 11분 뒤인 오후 3시 2분께 경보 3단계를 발령했고, 30여분 만에 4단계로 상향했다. 이후 오후 6시 넘어서 최고 등급인 5단계를 발령했지만 고층·밀집 구조와 대나무 비계 낙하물 등으로 접근이 어려워 초기 진화에 난항을 겪었다. 현재까지 4개 동은 진화됐으나 3개 동에서는 잔불 정리가 계속되고 있다.

홍콩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약 3300만 홍콩달러(약 62억원)를 투입해 단지 보수 공사를 진행해왔으며 가구당 부담금은 16만~18만 홍콩달러에 달했다. 그럼에도 안전 규정 준수 여부·감독 체계의 미비가 잇따라 드러나며 홍콩식 재건축 시스템 전체에 대한 점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이번 화재에 대해 "대규모 참사"라고 표현하며 "현재 최우선 과제는 진압과 구조다. 곧 철저한 조사와 제도적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내달 7일 홍콩 입법원선거(국회의원 총선거)가 예정된 가운데 대형 참사가 터지면서 정부는 선거 일정 연기를 검토하는 등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