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fn광장

[fn광장] 클림트의 마지막 화실에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27 18:37

수정 2025.11.27 18:37

그의 쇤부른 궁전 인근 화실서 그린
1916년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
현대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 3460억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그린
'부채를 든 여인'은 1415억에 낙찰
그의 작품이 마지막 화실로 이끈다
1918년 1월 18일 구스타프 클림트가 뇌졸중으로 쓰러질 당시를 재현한 화실 조성관 대표 제공
1918년 1월 18일 구스타프 클림트가 뇌졸중으로 쓰러질 당시를 재현한 화실 조성관 대표 제공

'황금빛 에로티시즘'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겨울의 문턱에서 다시 우리 앞에 화려하게 나타났다. 지난 11월 중순 미국 뉴욕 경매에서 그의 1916년 작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이 2억3460만달러에 낙찰되면서 뉴스의 중심에 등장했다. 무려 3460억원. 현대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다.

클림트는 오스트리이아 빈에 태를 묻고 빈에서 눈을 감았다. 빈에서 화가로 스타덤에 올랐고, 빈대학 학부화(畵) 파문으로 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빈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클림트의 대표작은 누구나 아는 대로 '키스'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이다. '키스'는 벨베데레 국립미술관에 상설 전시 중이다. 외부 전시가 불가능해 '키스'를 보려면 벨베데레 궁전을 가야 한다.

클림트의 작품이 현대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는 별칭이 있는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이 2006년 뉴욕 경매에서 1억3500만달러(약 1620억원)에 거래되었다. 이 그림은 현재 뉴욕 노이에 미술관이 소장 중이다. 이 그림에 얽힌 실화를 다룬 영화가 '우먼 인 골드'다.

56년의 생애를 산 클림트가 전업 화가로 나선 것은 빈공예학교를 졸업하던 스물한 살 때인 1883년. 화가로 산 35년 동안 그는 세 곳의 아틀리에를 거쳐갔다. 그중 1912년부터 사용한 마지막 화실만이 보존되어 현재 기념관으로 운영된다.

모든 성공한 화가들은 공통된 패턴이 있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자연과 접한 한적한 곳에 아틀리에를 두는 것이다. 넓은 작업 공간을 확보하기에 유리하다는 측면과 함께 지리적 거리가 보장되어야만 작업에 몰입하는 데 용이해서다.

클림트의 마지막 화실은 쇤부른 궁전과 가깝다. 대중교통으로는 지하철 U4 히칭역에서 내려 트램을 갈아타면 10여분 거리. 빈 중심가에서 아틀리에까지 가려면 1시간 넘게 걸린다.

클림트는 이층집의 1층을 아틀리에로 사용했다. 화실 입구는 남향이나 동향이 아닌 북향. 그래야만 햇빛의 양이 일정하기 때문이다. 아틀리에에서 그는 파란색 작업가운을 즐겨 입었다. 평생 연인이었던 에밀리 플뢰게가 디자인한 작업복이었다.

1918년 1월 18일 아침, 모델을 세워놓고 스케치를 하던 클림트가 '쿵' 하고 쓰러졌다. 모델들이 놀라며 허둥댔다. 클림트가 힘겹게 말했다. "에밀리를 불러줘."

그렇게 몇시간이 흘러갔다. 골든타임을 넘긴 상태에서 에밀리가 마차를 타고 달려와 그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목숨은 건졌으나 화가는 말을 하지 못했고, 붓을 잡지도 못했다. 그리고 2월 6일 눈을 감았다.

나는 2006년 '빈이 사랑한 천재들'을 취재하며 클림트의 마지막 아틀리에를 찾아간 일이 있다. 당시만 해도 이 작업실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지인을 통해 클림트협회와 약속을 잡아 방문할 수 있었다.

화실에는 그림 세 개가 이젤에 세워져 있었다. 화가는 작품 세 점을 동시에 그렸다고 관계자가 설명했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작업을 하던 작품들. 맨 왼쪽의 이젤에는 막 스케치를 시작한 캔버스가, 오른쪽 이젤에는 완성 단계에 이른 '부채를 든 여인'.

그가 생의 끝자락에 완성한 '부채를 든 여인' 진품이 2023년 런던 경매에서 8530만파운드(약 1415억원)에 낙찰되었다. 2024년 빈에서 열린 경매에서 4000만유로(약 680억원)에 거래된 '리제르 양의 초상'도 1917년 이 작업실에서 태어났다. 지금 유럽과 미국의 경매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탄생했다. 이번에 화제를 불러온 1916년작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도 여기서 완성되었다.

이 작업실이 몇년 전 '클림트 빌라'로 이름을 바꿔 일반에 공개됐다. '클림트 투어'를 신청만 하면 누구나 클림트의 흔적을 따라가는 최고급 인문여행을 즐길 수 있다.

과묵한 남자였던 그는 과작(寡作)의 아티스트였다.
작품 수가 적다 보니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클림트 빌라는 구스타프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이다.
3460억원짜리 전신 초상화가 마지막 화실에 저장된 그의 시간들을 불러냈다.

조성관 작가 ‘지니어스 테이블’ 대표
조성관 작가 ‘지니어스 테이블’ 대표

조성관 작가 ‘지니어스 테이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