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토신은 분자량이 1,007에 이르는 펩타이드 호르몬이다.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많이 분비되며 많이 분비될수록 더 분비를 촉진하는 포지티브 되먹임 구조를 갖고 있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감정은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엄마 아빠가 되면 아이를 사랑하는 감정이 본능적으로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산 전 태교를 하며 아이에 대한 사랑을 키워 나가고 출산 직후 아이와 첫만남을 가지는 순간부터 벅찬 사랑을 느낄 것이라는 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모성애에 대한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르다. 1980년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초산 여성의 40%와 두 번째 출산을 마친 여성의 25%가 처음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 아무런 감정을 못 느꼈다고 한다. 특히 분만을 유발하기 위해 인공양막 파열술을 받았거나 매우 고통스럽고 긴 진통을 겪었거나 메페리딘 진통제를 투여 받은 산모들이 모성애를 잘 느끼지 못했다.
다행히 일주일 안에 대부분의 산모가 모성애를 느끼기 시작했지만 산후우울증이 있는 엄마들은 3개월이 지나도 아이에게 관심을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아이가 싫다고 대답한 산모도 있었다. 출산 직후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는 여성의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두 건의 관련 연구를 보면 출산 2주 후 조사에서 아이와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는 엄마가 7.1%이고 출산 12주 후 조사에서는 8.9%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아이에게 심한 분노를 느낀다는 엄마가 8.3%에 이르렀다. 원치 않은 임신, 임신중 태아와의 교감 부족 등이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성애를 느끼지 못할 때 가장 당황스러운 사람은 엄마 자신이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싶은 마음도, 돌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을 때 스스로 죄책감에 휩싸인다.
심리학자들은 이 여성들이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주로 어린 시절 엄마와의 관계나 대인관계, 경제적 상황 등에서 찾으려고 했다. 물론 이러한 심리적 원인도 큰 영향을 끼치지만 이들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바로 감정과 행동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이다.
생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이 여성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1979년 발표된 한 논문이 과학계를 뒤흔들었다. 한 번도 새끼를 낳아본 적이 없는 처녀 쥐들의 뇌에 옥시토신 0.4마이크로그램(μg)을 주입하자 그중 42%가 완전한 엄마 쥐로 바뀌었다. 이들은 갑자기 둥지를 짓기 시작했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끼 쥐를 둥지로 데려와 핥고 보듬으며 정성스럽게 돌보았다.
이것은 바소프레신이나 식염수를 주입 받은 쥐에게서는 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부분적으로 엄마 쥐의 행동을 보여준 쥐들 역시 옥시토신을 주입 받은 경우가 식염수나 바소프레신을 주입 받은 경우보다 훨씬 높았다.
옥시토신이 뇌에서 모성의 감정을 일으킨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발견이었다. 옥시토신은 호르몬 중에서 비교적 일찍 발견된 물질이다. 1900년대 초에 이 물질이 분만 시 자궁수축과 분만 이후 젖분비에 관여한다는 것이 밝혀졌고 1920년대에 이 물질을 시상하부 조직으로부터 분리해내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9개의 아미노산이 결합된 펩타이드라는 것을 밝혀내고 합성에 성공한 것은 1950년대다. 합성에 성공한 과학자는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하지만 처녀 쥐 논문이 발표된 1979년까지만 해도 이것이 모성의 감정과 관련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모성은 주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젖분비호르몬인 프로락틴을 중심으로 연구해왔기 때문이다. 이후로 과학자들은 옥시토신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1987년의 연구에서는 막 출산을 마친 위스타쥐의 뇌에 옥시토신 억제제를 투여하자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옮기고 핥는 등 엄마로서 해야 할 일들이 현저히 지연되는 현상을 보였다. 심지어 6마리 중 2마리는 한 시간이 지나도록 새끼를 들어올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은 식염수를 투여 받은 쥐들이 모두 10분 내에 둥지를 만들고 새끼들을 둥지로 옮긴 것과 대조적이다.
그리고 2011년, 또 하나의 놀라운 연구가 발표되었다. 처녀 쥐에게 옥시토신을 단 한 차례 주입하자 뇌가 엄마 쥐의 뇌로 완전히 재프로그래밍되었다는 것이다. 주입 전에는 새끼의 울음소리에 전혀 무관심하고 심지어 귀찮다는 듯 새끼를 짓밟기까지 했던 처녀 쥐가 옥시토신을 주입 받은 후 엄마 쥐로 돌변하여 우는 새끼를 입으로 부드럽게 들어올리고 정성스럽게 돌보기 시작했다.
뇌에서도 변화가 관찰되었다. 처음에는 새끼의 울음소리에 불규칙한 반응을 보이던 뇌세포가 점차 질서 정연한 엄마 쥐의 뇌 패턴으로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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