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당신이 죽였다'가 던진 질문... "법은 그녀를 지켜주지 않았다" [한승곤의 인사이트]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29 06:00

수정 2025.11.29 06:00

[넷플릭스 드라마 '당신이 죽였다']
우리는 왜 살인자가 성공하기를 기도했나
그녀들을 살인자로 내몬 것 남편뿐만 아냐
법이 외면한 지옥, 두 여자가 '괴물'이 되기로 선택한 이유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글로벌 1위, 이 드라마는 가정폭력의 현실과 사법 시스템의 부재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죽였다>가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어쩌면 방관자 일도 모르는 우리 사회에 어떤 서늘한 경종을 울리고 있는지 짚어봅니다. 다만 스포가 있으니 아직 드라마 시청을 안 했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죽이거나, 죽거나. 선택지는 두 개뿐이었어요."

지난 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As You Stood By)>는 공개 2주 만에 비영어권 부문 글로벌 1위를 차지하며 2025년 하반기 최대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이 작품은, 단순히 자극적인 살인 공모를 다룬 스릴러가 아니다.

드라마는 가정폭력이라는 '지옥도' 안에서 법과 사회가 어떻게 피해자를 방치하는지, 그리고 그 방치가 어떻게 평범한 여성을 살인자로 만드는지를 서늘하게 추적한다.

시청자들은 왜 주인공 은수(전소니 분)와 희수(이유미 분)의 살인 계획에 열광하며, 그들의 범죄가 성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가. 이 기이한 '응원'의 기저에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가정폭력 피해자가 처한 현실적 절망이 깔려 있다.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맞을 짓을 해서 때렸다"... 영혼 파괴하는 가스라이팅 실체

드라마는 신체적 폭력의 전시보다 피해자의 영혼이 파괴되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극 중 희수의 남편 진표(장승조 분)는 밖에서는 능력 있고 젠틀한 엘리트지만, 현관문을 닫는 순간 악마로 돌변한다. 주목할 점은 그의 폭력이 단순히 주먹을 휘두르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네가 나를 화나게 했잖아", "너는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라는 식의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은 희수를 심리적 감옥에 가둔다.

이는 현실의 가정폭력 양상을 정확히 반영한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의 70% 이상이 신체적 폭력과 함께 정서적 학대를 경험했다. 드라마 속 희수가 멍든 얼굴을 화장으로 가리며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되뇌는 장면은, 폭력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게 만드는 가해자의 교묘한 심리 조작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여준다.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왜 도망치지 않아?"... 피해자 두 번 죽이는 질문

많은 이들이 가정폭력 사건을 접할 때 "그렇게 힘들면 이혼하거나 도망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당신이 죽였다>는 이 질문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무지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희수는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완전히 종속되어 있으며, 친정 식구들조차 그녀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며 방관한다.

심리학 전문가들은 이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으로 설명한다. 반복되는 폭력과 통제 속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의지로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되고, 결국 탈출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무생 배우가 연기한 진소백 캐릭터는 이러한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조력자로 등장하지만, 현실에는 진소백 같은 '키다리 아저씨'가 존재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피해자가 도망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구조가 그들을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었음을 웅변한다.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계획된 살인, 정당방위 될 수 있나?

극 중 은수와 희수는 치밀하게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시청자들은 이를 '정당한 복수'로 느끼지만, 현실의 법정에서도 이것이 용인될 수 있을까.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는 냉정하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해당 드라마를 분석하며 "현실적으로 계획된 살인이 정당방위로 인정받기는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 형법상 정당방위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폭력이 멈춘 상태에서 살인을 공모하고 실행하는 행위는 살인죄, 혹은 살인예비음모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23년 8월 30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아내에게 법원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 폭력을 당해온 사정은 참작하나, 살인이라는 수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는 드라마 속 은수와 희수가 왜 경찰 신고 대신 '완전 범죄'를 꿈꿀 수밖에 없었는지를 역설적으로 설명한다. 신고를 해도 격리 조치는 일시적이며, 풀려난 남편의 보복은 더욱 잔혹해질 것이라는 공포. 법이 지켜주지 않는 생명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그들은 살인자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결국 <당신이 죽였다>가 가리키는 진짜 범인은 누구

드라마의 원제는 '나오미와 가나코'이지만, 한국판 제목은 <당신이 죽였다>로 변경되었다. 영어 제목인 As You Stood By(당신이 방관하는 동안)와 연결 지어 볼 때, 이 제목은 중의적이다. 일차적으로는 남편을 죽인 희수와 은수를 가리키지만, 더 깊게는 그들이 살인을 선택할 때까지 침묵하고 방관한 '당신', 즉 우리 사회 전체를 지목한다.

특히 경찰이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며 돌아설 때, 이웃이 비명을 듣고도 TV 볼륨을 높일 때, 피해자는 사회적으로 타살당하고 있었다. 드라마는 묻는다.
살인을 저지른 두 여자와, 그들을 살인자로 내몬 사회 중 누가 더 죄가 무거운가.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이 같이 말한다. "드라마가 끝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찝찝하다.
" , "그래서 희수가 행복을 찾았나요?"

드라마가 끝나고 가슴이 먹먹한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희수가 숨죽여 울고 있음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