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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 12월의 독립운동에 ‘13도창의군 결성’ 선정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28 17:37

수정 2025.11.28 17:37

‘13도창의군 결성’ 의병연합군 조직해 서울진공작전 전개
올해 12월의 독립운동으로 선정된 ‘13도창의군 서울 진격전’ 펜일러스트. 독립기념관 제공
올해 12월의 독립운동으로 선정된 ‘13도창의군 서울 진격전’ 펜일러스트. 독립기념관 제공
[파이낸셜뉴스] 국가보훈부는 광복 80주년인 올해 ‘12월의 독립운동’으로 ‘13도창의군 결성’을 선정했다. 13도창의군은 1905년 이후 일제의 국권 침탈이 본격화되자 전국에 퍼져있던 의병 세력을 모아 13도 의병 연합군을 조직해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한 역사적 의거였다.

28일 보훈부는 이번 이달의 독립운동을 선정하기 위해 1개월간 국민의 추천을 받았다며 이같이 전했다.

보훈부는 국민이 추천한 12월의 독립운동으로는 민중대회사건(1929), 중앙군관학교 한국특무대독립군 조직(1934), 대한민국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1941),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전시국방복무요령 발표(1941), 평양사단 조선인 학병 탈출사건(1944), 고려독립청년당 결성(1944) 등 많은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일제에 의한 국권 찬탈로 대한제국 정부가 외교권을 빼앗기고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되자, 해산 군인과 각지의 의병이 결집하며 투쟁이 확대됐다.



13도창의군은 비록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전국에서 확산된 의병항쟁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결성된 최초의 전국적 연합의병부대로 무력투쟁과 외교운동을 병행하는 전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실제로 각국 영사관에 통문을 보내 일본의 불법을 고발하며 의병을 국제법상 전쟁단체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등 당시 의병 지도층이 지니고 있던 국제적 안목을 보여준다.

이러한 활동은 장기간 지속된 의병운동의 역량을 보여주었으며, 나아가 이후 국내외에서 치열한 무장투쟁 운동이 전개되는 전환점이 됐다.

강원·경기에서 활동하던 이인영과 허위를 중심으로 전국 의병 지도자들이 연합해 1907년 말 13도창의대진소를 조직했고 이인영이 총대장, 허위가 군사장으로 추대됐다. 이들은 일제 통감부를 공격해 일제와 강제로 맺은 조약을 파기하고 국권을 회복하며 친일 관료를 처단한다는 목표로 서울진공작전을 계획했다.


1만 명 규모의 의병이 경기도 지평과 양주에 집결해 여러 전투에서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후속부대의 본진 도착 지연과 탄약 부족 등으로 서울까지 진공이 어려워졌으며, 일본군의 대대적 탄압이 이어지면서 민긍호(1962년 대통령장)·이강년(1962년 대한민국장)·허위(1962년 대한민국장)·이은찬(1962년 대통령장)·이인영(1962년 대통령장) 등 핵심 지도부가 잇달아 전사하거나 체포·순국했다.

12월의 독립운동 관련 ‘항일의병 13도창의군 탑’. 국가보훈부 제공
12월의 독립운동 관련 ‘항일의병 13도창의군 탑’. 국가보훈부 제공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