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문제는 이것이 '성공적인 선례'로 남을 때 발생할 파급효과다. 당장 내년부터 나오기 시작할 원태인, 구자욱, 박동원 등 100억원을 호가할 선수들을 떠올려보자. 그들이 이번 사례를 들어 '우선협상 결렬 시 조건 없는 방출'을 요구한다면 구단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만약 이 조항이 관례처럼 굳어진다면 KBO가 애써 만든 FA 등급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진다. 자금력이 풍부한 구단이 특급 선수를 싹쓸이하는 '약육강식'의 원시시대로 회귀하게 된다.
최근 야구계가 특정 에이전시의 독과점 논란, 몸값 거품 논란 등으로 시끄럽다. 하지만 냉정히 묻고 싶다. 그 '대형 에이전트'에 힘을 실어주고, 기형적 계약조건에 도장을 찍어준 것은 누구인가. 바로 구단들 자신이다. 구단들은 대형 에이전트사의 횡포를 비난하지만, 뒤에서는 "우리 팀 성적이 먼저"라며 비상식적 요구를 수용하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 시즌이 끝나면 시장 과열을 탓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투자는 환영하지만, 리그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편법까지 '투자'라는 이름으로 포장돼서는 안 된다.
일단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KBO가 나서야 한다. 자유계약의 원칙은 존중하되, 그 자유가 리그의 존립 기반인 제도를 침해할 때는 개선의 명분이 생긴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선행돼야 할 것은 구단들의 인식 변화다. 구단들이 담합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최소한 리그 질서를 파괴하는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는 '합리적 공감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2025년 스토브리그는 KBO리그 구성원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원칙을 지키며 공생할 것인가, 아니면 편법이 난무하는 무질서 속에서 각자도생하다 공멸할 것인가. '조건부 방출'이라는 기형적 계약이 남긴 경고를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문화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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