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차 대기업 말년부장 김낙수
제지회사 베테랑 기술자 유만수
어느날 갑자기 해고 '제2의 인생'
행복을 찾아 떠난 그들의 선택에
많은 관객들 "남일같지않다" 공감
"고생했다 김부장" 응원 메시지도
제지회사 베테랑 기술자 유만수
어느날 갑자기 해고 '제2의 인생'
행복을 찾아 떠난 그들의 선택에
많은 관객들 "남일같지않다" 공감
"고생했다 김부장" 응원 메시지도
1972년생 낙수는 누구나 알 만한 좋은 대학을 나와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25년차 직장인이다. 단 한번의 진급 누락도 없이 엘리트 코스를 밟아 이제 곧 상무 승진을 눈앞에 둔 그를 사람들은 "김 부장"이라고 부른다. 그 스스로도 그렇게 불리는 걸 참 좋아하고, 때론 가슴 뿌듯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그에겐 비록 '구축'이긴 하지만 서울 강동구에 자가가 있고, 사립 명문대에 다니는 자랑스러운 아들도 있다. "대기업 25년차 부장으로 살아남아서 서울에 아파트 사고 애 대학까지 보냈으면 위대한 인생"이라며 그는 스스로를 다독인다.
1970년생 만수도 낙수에 뒤질 게 없다. 25년간 국내 유수의 제지회사(그러나 지금은 외국계 회사에 인수됐다)에 몸담아온 그는 작은 나무 망치로 종이더미를 두드려보기만 해도 종이의 상태와 결함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제지업계의 베테랑'으로, 역시나 사회가 성공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보유하고 있다. 온실과 정원이 딸린 근사한 단독주택에 사는 그는 꽤 고급 취미에 속하는 '분재'를 즐기고, 아내와는 사교댄스와 테니스를 함께 배운다. 그리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딸의 미래를 위해 첼로 레슨 정도는 시킬 수 있는 경제적 여유도 있다. "모든 걸 다 이뤘다"고 자부하는 그는 그런 자신이 자랑스럽고 때론 기특하기까지 하다.
한데 이런 그들에게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온다. 상무 승진을 99.9% 확신했던 낙수에게는 지방 공장 발령이라는 날벼락이 떨어지고, 승승장구하는 줄만 알았던 만수에게는 해고통지서라는 '도끼'(영화의 원작 소설 제목이 '액스', 즉 도끼다)가 날아든다. 회사를 위해 뼈를 갈아 넣었던 그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신을 이끌어주던 회사 선배에게 하소연을 해보고, 외국인으로 교체된 경영진에게 짧은 영어로 항의도 해보지만 모든 게 소용없다. 허나 이렇게 끝낼 순 없다고, 이렇게 모든 걸 잃을 순 없다고, 두 사람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실직이라는 똑같은 재앙에 직면했지만,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낙수와 만수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낙수는 지방 공장 안전관리팀장으로 있으면서 본사 인사부의 요구대로 해고 근로자 명단을 제출하면 본인은 서울로 컴백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퇴직을 선택하고, 만수는 제지회사 재취업을 위해 잠재적 경쟁자들을 차례대로 제거할 무모하지만 절실한 계획을 세운다. 여기서 독자(讀者)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선택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맞다'거나 '틀리다'고, 혹은 '좋다'거나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그들을 이해해보는 것이다. 세차장을 차려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낙수 이야기가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왜 여전히 슬픈지, 그리고 재취업을 위한 만수의 세 번의 해괴망측한 살인 소동극을 지켜보는 것이 불편하지만 왜 짠한지 헤아려보는 일 말이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제11화에서 두 낙수가 대화를 나눈다. 회사에서 쫓겨난 현재의 낙수가 김 부장이던 과거의 낙수에게 고백처럼 말한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고. 그랬더니 과거의 낙수가 현재의 낙수에게 말을 건넨다. 그동안 너무너무 미안했다고. 현재의 낙수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자 과거의 낙수가 또 독백처럼 말한다. 이젠 행복하라고, 제발 행복해지자고. 나는 바란다. 1972년생 낙수와 1970년생 만수가 모두모두 행복하길. 그들이 선택한 제2의 인생이 제발 무탈하길. 그리고 드라마 속에서 낙수의 아내 하진이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고생했다, 김 부장."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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