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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마리 아이트 "기억은 국가·사회 관통해 세대를 가로지른다" [2025 연세노벨위크]

홍채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05 15:51

수정 2025.12.05 15:51

한강에서 크리스토프까지…문학이 만든 세계적 '연대'
2025 연세노벨위크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강연 중인 나야 마리 아이트.사진=홍채완 기자
2025 연세노벨위크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강연 중인 나야 마리 아이트.사진=홍채완 기자
[파이낸셜뉴스] 2008년 북유럽 평의회 문학상, 2020년 덴마크 한림원 대상, 2022년 스웨덴 아카데미 북유럽상을 수상한 작가 나야 마리 아이트가 4일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2025 연세노벨위크' 기조강연에서 식민 전쟁, 여성 폭력, 기후 위기 등에 걸친 '트라우마의 세계사'를 짚었다. 아이트는 한강 작가의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을 기념한 이번 행사에 초청돼 "기억은 개인의 상처에 머물지 않고 국가·사회·세대를 관통하는 구조적 문제"라고 말했다.

아이트는 자신이 그린란드 아시아트에서 태어났다고 소개하며 "겨울에는 외부와 단절되다시피 했던 작은 공동체"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배경에는 덴마크의 식민 지배가 있었다"면서 10대 소녀들의 자궁에 동의 없이 피임 장치를 강제로 삽입하고, '문명화'의 이름으로 아동들을 가족과 격리해 덴마크로 보내던 시대적 상황을 언급했다. 그린란드의 자연과 원자재뿐만 아니라 언어와 몸, 공동체 전체가 통제됐다는 설명이었다.



가족이 덴마크로 이주한 뒤 모국어인 그린란드어를 잃었다는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저항운동)로 활동하다 게슈타포(나치 독일의 비밀 경찰)에 체포돼 2년 동안 감옥에서 고문 당한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도 전했다. 아이트는 "고문의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흐릿해지지 않는다"며 "오히려 그 기억만 또렷하게 남고 나머지 모든 것이 서서히 닳아 없어진다"고 말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기조강연의 상당 부분은 한강 작품에 대한 분석으로 채워졌다. 아이트는 광주민주항쟁을 조명한 '소년이 온다'에 특히 주목했다. 그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학살과 죽음, 억압과 테러가 어떤 상흔을 남겼는지, 어떤 강요된 기억을 남겼는지 이야기해주는 작품"이라며 그 주제의식에 대한 깊은 공감을 표했다. 그는 "완전히 다른 역사적 상황에서도 트라우마의 경험은 동일한 구조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난민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도 강연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다. 헝가리에서 스위스로 망명해 서툰 프랑스어로 글을 쓴 크리스토프에 대해 그는 "언어 상실 자체가 폭력의 한 형태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학적 형식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의 작품을 통해 난민의 삶이 무엇인지, 전쟁 속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체성을 빼앗기고 차별과 굴욕, 멸시를 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깊이 이해하게 됐다"고 연대감을 보였다.

더 나아가 기후 위기 역시 기조강연 말미의 핵심 주제였다.
그는 "내 어린 시절 그린란드에서 경험했던 혹한의 겨울은 점점 덜 추워지고 있다"면서 "우리는 기후 위기, 혹은 기후 '재난'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희망은 필요하지만 희망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행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 현장. 왼쪽부터 주일선 연세대학교 교수, 카멜 다우드, 나야 마리 아이트, 찬와이.사진=홍채완 기자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 현장. 왼쪽부터 주일선 연세대학교 교수, 카멜 다우드, 나야 마리 아이트, 찬와이.사진=홍채완 기자
whywani@fnnews.com 홍채완 기자